사람의 운명이란 인간을 지배하는 필연적이고 초월적인 힘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길흉화복으로 태어난 운수나 수명을 말한다. 그리고 길흉화복은 길함(운이 좋음)과 흉함(결과가 나쁨)과 재앙과 행복인 사람의 신수다. 이러한 운명을 사람들은 팔자로 여기는데 팔자는 사람의 평생운수이다. 음력 정초가 되면 주로 노인네께서 자기의 운을 남에게 맡기는 것으로 ‘토정비결’을 찾는다. 과학의 문화가 초고속으로 발전하는 이 시점에도 가정에서나 장날 노상에서 한 해의 길흉을 점치는 일이 아직도 있다.‘토정비결’은 조선 명종 때 사람인 아호가 토정이고 이름은 이지함이 지은 것으로 숫자풀이 해석이다. 필자도 어려운 말인, 태세·월건·일진을 숫자로 풀어셈(계산)하여 그 해의 신수를 보는 책이다. 토정은 주역의 음양설에 근거하여 유행하던 여러 가지 술서를 인용하여 엮은 것이다. 그는 한 때 여러 방면에 걸쳐 체계가 서지 않은 학문이나 지식을 다룬 잡학을 즐기던 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역사와 수학에 정통한 학자로 알려진 이지함은 의약·복서(점보는 책)·천문·지리·음양·술서에 능한 자라 한다. 아산 현감으로 이조판서에 올라 아산의 각 서원에 기거하면서 공부한 선비였다고 한다. 비결이란 말은 남이 알지 못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데 토정비결의 내용은 거의 예방적 차원의 선각적 술어가 많다. 누구나 지키면 유익이 되는 용어로 선도하는 글의 모음이라 한다. 간혹 격에 맞지 않은 엉뚱한 예언도 좋은 쪽으로 풀이하면 덕스런 말씀이 된다고 한다. 노인네들의 심정에 위안을 주는 것들이 주효되고 있다. 그는 기인(별난 사람)이고 보통사람과는 달리 재주가 신통하고 뛰어난 인재인 이인이다. 전체적 내용은 덕담과 더불어 매사에 주의하고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들이 많이 수록된 인간 윤리의 교본인 것 같다. 운(행운과 불운)이란 인간의 힘을 초월한 천운과 기수(운명)인데 이 세상에 운 같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이 시련·형벌·보상 내지는 선견(미리 아는 것)이다. 운-불운은 칼과 같다고 한다. 그 칼날을 쥐느냐. 칼자루를 쥐느냐에 따라 사람들을 상처 입히든가 쓸모가 있든가 하게 된다. 그러나 사람의 일생을 지배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운(운수)이라 한다. 일이 되어가는 것은 인간의 마음과 같이 뭐가 뭔지 모르는 데로 나아가는 일이 많다. 추측에서 벗어나 야기되는 모든 것을 운수로 말미암은 것으로 돌리는 습관이 있는 것은 다 이 때문이다. 운명의 여신은 잠들고 있는 동안에 찾아온다. 나의 운수가 상스럽고 불길하다 해서 이 나쁜 운기를 누구에게 물어보며 누굴 탓하겠는가. 이 세상 누구도 자기의 운명을 바꿀 수는 없다. 프랑스의 사상가 몽테뉴는 ‘수상록’에 운명은 우리를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만들지 않는다. 다만 그 재료와 씨를 우리에게 제공할 뿐이다.   운명은 받아들이는 사람을 이끌어주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끌어당긴다. 사람은 운명을 피하려다 비켜 간 길에서 종종 운명과 만난다. 사람의 운명은 바람과 비슷하다. 보통 사람들은 운명에게 과도하게 바라기 때문에 스스로 불만의 씨앗을 싹트게 하고 있다. 인간은 운명에 전부를 맡길 수는 있어도 그것을 관여할 수는 없다. 또한 인간은 운명이라는 실을 꼴수는 있어도 그것을 칼로 자를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람은 운명을 피하면서 운명을 동경하면서 잘 되기를 원한다. 인간의 운명이 자기의 손아귀에 있다고 하나 하나님께 맡기면서 간절한 마음, 정성된 마음, 기다리겠다는 확신 속에 결정된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워는 운명이 카드를 섞고 승부는 우리 스스로가 한다고 한다. 운명보다 강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동요하지 않고 운명을 짊어지는 용기다. 자기의 운명을 만드는 자는 자기 자신뿐이다. 운명에는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내 인생 내 지게에 지고 가는 것이 인간인데 그러나 토정비결은 미래의 길흉에 관하여 예언을 기술한 술법을 기록한 도참서 (예언하는 술법)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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