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안심놀이터 소독방역 사업을 하는 에코N경주 송혜숙(62) 대표는 1997년 대구에서 경주로 이주했다. 그는 살아오면서 다양한 직종의 일을 경험했지만 생활이 안정된 적은 없었다. 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설상가상 큰 사고를 당해 그나마 생계를 이어가던 일을 손에서 떠나보냈다. 긴급수급자로 지정돼 국가에서 지원하는 최저 생계비를 받으며 생활하는 최악의 상황을 만났다. 하지만 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15년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취득해 경로당을 중심으로 어르신들에게 웃음을 전파했다. 급박한 생활환경에서 스스로 웃음을 놓지 않으려는 자구적인 노력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급식봉사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찾아가면서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했다. 그러다가 고용센터에서 상담을 하고 경주지역자활센터를 소개받았다. 7개월간의 수습기간을 거쳐 에코N경주라는 자활기업을 창업했다. 그리고 송 대표는 생애 최초로 매달 고정된 수입을 갖게 됐다. 계획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은 물론이고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존감과 심리적 안정감도 덤으로 얻었다. 앞으로 몸이 아프지 않은 한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 그를 행복하게 했다. 송 대표는 “평생을 도움만 받고 살다가 이제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며 “앞으로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경주지역 급식지원사업단의 최광식(51)씨는 20대에 직장생활을 약 10년 가까이하다가 퇴직한 후 직업을 갖지 않고 살았다. 직장인이었던 시절에는 모친을 부양하고 동생을 공부시키는데 정성을 쏟다가 퇴직 후의 생활은 전혀 엉뚱하게 흘러갔다. 눈을 뜨면 시간이 더디게 흐르고 친구들과의 교류가 끊겼다. 아무런 의욕이 없고 가족과 이웃과의 대화는 단절됐다. 농사일이나 공사판에서 하루 품팔이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지만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떨칠 수 없었다. 기초생계수급 대상자였지만 지원 제도가 있는지 몰라서 그마저도 혜택을 받지 못했다. 최씨는 코로나19 펜데믹 때 전국민 지원금을 신청하러 행정복지센터를 찾았다가 경주지역자활센터의 자활근로사업인 급식지원사업단을 소개받았다. 그리고 이 사업에 참여하고 나서 생활의 활기를 되찾았다. 처음 3~4개월은 힘들었다. 평생을 느슨하게 생활하다가 일정한 스케쥴에 적응하려다 보니 버거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일이 몸에 익게 되면서 인생이 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최씨는 “일을 시작하면서 엄청난 기회를 가졌다고 생각했다”며 “막막한 삶을 살다가 꿈을 꿀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희망저축도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내 한몸을 건사한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는 “현재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해 정상적인 사회인이 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조리사 자격증과 대형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다회용기 세척사업을 하는 에코위싱N경주사업단의 이분련(63) 반장은 지체장애인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10대 초반부터 남의집살이를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발목 부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집 주인의 배려로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보니 류마티스 관절염이라고 했다. 주인이 수술을 받게 도와줬지만 크게 좋아지지 않았고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조약치료를 했지만 장애를 안게 됐다. 결혼을 했지만 남편도 장애인이었다. 당연히 남편도 일정한 수입이 없었다. 이일 저일 일자리를 찾았지만 장애인이라고 일거리를 잘 맡기지 않았다. 4남매를 낳아 기르면서 교육까지 시키느라 온갖 신산을 겪었다. 이 반장은 에코위싱N경주사업단에 참여하고 나서 평생 처음으로 제대로 된 급여를 받게 됐다. 지금 받는 급여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고 성과급까지 받게 되니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최근 남편이 신장수술을 받게 됐어도 병원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 반장의 오른쪽 다리는 왼쪽 다리에 비해 7㎝ 짧다. 일하기에 불편한 것은 당연했다. 최근 대구의 장애인 수제화 생산업체에서 구두를 맞춤 제작해서 불편함이 많이 줄었다. 이 반장은 “지금처럼 행복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며 “앞으로 5~6년은 더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지금부터 차분하게 노후생활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이들은 모두 경주지역자활센터의 자활근로사업 참여자들이다. 센터는 처음 자활후견기관으로 출범해 2001년 경주센터로 개소했다. 그동안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근거해 현재 12개의 사업단을 운영하고 있고 올해 1개의 신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센터는 IMF 이후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게 되자 근로 능력이 있는 수급권자를 대상으로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일자리의 질적 향상은 물론이고 사업의 규모화를 통해 양질의 근무환경을 조성해 자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행정의 보조금만으로는 많이 부족했다. 특히 사업의 규모를 키우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물론 기업후원금, 적립된 자활기금, 자활복지개발원의 펀드지원금 등도 도움이 됐지만 여전히 예산이 부족한 현실을 극복하기 어려웠다. 이때 등장한 구원투수가 월성원자력본부였다. 2019년 월성본부의 사업자지원사업을 신청해 이듬해부터 급식지원사업단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까지 꾸준히 5개 자활사업과 후원사업에 8억5600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시설투자와 장비구축에 사용했다. 센터의 사업을 키우고 활성화하는데 절대적인 도움을 받은 것이다. 정희근 센터장은 “월성본부의 지원사업은 매출이 높은 사업들이어서 참여자들의 수령액이 많아지는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며 “다시는 60만원의 생계급여를 받는 시절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활센터의 목표”라고 말했다. 월성본부의 이같은 지원에 힘입어 경주지역자활센터는 2021∼2022년 보건복지부 성과평과 결과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월성본부는 취약계층의 경제자립기반 조성을 위해 일자리 창출 사업을 추진하고 ESG 가치실현을 위한 친환경문화를 조성함과 동시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한다는 차원에서 자활센터의 사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월성본부의 자활센터 지원사업을 통해 그동안 39명의 일자리를 만들었고 올해 14명의 일자리가 더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김한성 월성본부장은 “어려움을 겪던 분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아 보람을 얻게 된 것을 보면서 기업이 사회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일자리 창출사업을 발굴하고 지원해 취약계층의 자립 기반을 마련하는 데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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