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일사불부환(人生一死不復還)’이라 하여, 사람은 한번 죽으면 이 세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누구나 장생불사하지 못하고 유턴(U-turn) 불가의 종생을 맞이해야 한다.   죽음은 생세에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살아오던 반려자, 가족, 친지와 영원한 별리(別離)이다. 그래서 죽음은 지극히 슬픈 상(喪)이다. 상은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애도의 뜻을 나타내는 행위이므로 예를 갖추어 치상을 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례는 대체로 유교적 영향을 받아 ‘사사여사생(死事如事生)’이라 하여 비록 죽은 목숨이지만 생시에 섬김과 같이 사후에서도 정성을 다해 섬겨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그래서 초종(初終), 발상(發喪), 목욕, 소렴(小殮), 대렴(大殮), 성복(成服), 조석전(朝夕奠)과 상식(上食), 조상(弔喪), 분상(奔喪), 치장(治葬), 천구(遷柩), 발인(發靷), 성분(成墳), 반곡(返哭), 우제(虞祭), 졸곡(卒哭), 부제(祔祭), 소상(小祥), 대상(大祥), 담제(禫祭), 길제(吉祭), 개장(改葬) 등 상례의 복잡한 절차를 엄숙히 거행해 왔다.   오늘날은 세변에 따라 전래의 상례가 허례허식으로 간주 되는 듯 초상 당일이나 운명(殞命)한 3일 만에 화장하여 안치(安置)•산골(散骨)해서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을 종결짓고 떠나는 보편적인 상례가 당연시되어 오는 듯하다.   의식은 품위와 인격을 형성하는 것인데 이것을 저버리는 것은 인격과 품위의 가치를 무시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격(格)은 바로 예를 숭상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과공(過恭)은 비례라는 말과 같이 칭가유무라 하여 형편에 지나쳐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2003년에 일본 가와사끼현(川崎市) 민단장에 참예(參詣)하여 유골 수습 장면을 보고 우리나라의 수습 의례와는 확연하게 다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자(當者) 김구석(金九錫)공은 청년기에 도일해서 재일거류민단 창단에 참가하여 여러 임원과 고문을 역임하였고, 현지 교포의 법적 지위 향상과 단합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특히 조총련 소속 단원의 전향과 조국의 새마을사업에 성금을 모아 송금하는 등 많은 봉사를 하신 분의 장례였다. 그래서 가와사끼현의 민단장으로 봉행 되었다. 일본에서 오랜 세월 동안 거주하였던 관계로 조국에서 운명하지 못하고 그곳의 장례문화에 적응하여 화장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 유감스러웠다.   유골이 운반 벨트에 실려 나오면 상주와 조문객이 두 줄로 엄숙히 서서 제공된 긴 목저(木箸)로 유골을 집어서 수습함(收拾函)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유골이 대부분 수습이 되고 나면 종업원이 나머지 골분(骨粉)을 담아서 유골함의 뚜껑을 덮고 깨끗한 종이로 사서 상주에게 안겨 주었다.   우리의 경우 화장장의 집사가 망치로 파골(破骨)하여 가루로 만들어 넣어 주는 것과는 판이했다. 상주는 그 유골함을 사찰에 일정 기간 봉안해 두었다가 그 후 고국의 선산(先山)에 매장하였다.   거년(去年)에 인척의 초상에 조문하고 화장한 유골을 가족 묘원에 안치할 때, 업체어서 온 집사가 상주에게 유골을 밟도록 하고, 팁을 요구하는 장면을 보았다.   화장장에서 모셔 온 부피 약 30cm 입방체의 유골함을 조용히 묻으면 될 터인데, 그것을 개봉하여 상주에게 밟아 다지는 절차는 좋게 보여지지 않았다. 그 행위가 화장 의례에 포함된 표준절차인지는 모르겠으나 밟는 모양은 부모와 마지막 작별하는 구원 정토의 길목에서 밟아 떠나시게 하는 것 같았다. 비록 고열에 소신(燒身)된 골분 이었으나 그것은 부모의 엄연한 분신(粉身)인데 그것을 자식이 밟아 다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비례의 불효행위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매장의 경우, 성분(成墳)할 때, 인부(人夫)에게 흙과 잔디를 밟도록 하는 것은 묘토(墓土)를 단단히 다지고 잔디가 착근이 잘되어 외풍을 견디며 자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데, 화장의 경우는 이것을 본 딴것인지는 몰라도 그 의미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칭(稱)함은 인간을 존중하는 각종 의례가 있기 때문일 것이며, 의례의 간소화가 인격의 간소화를 초래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시신을 고온에 소각시키는 화장의 풍경이 인간의 존엄을 불태우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암연(黯然)해 졌다. 존숭을 받는 존재가 되려면 의례의 본질적 의미를 알고 잘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예를 모르면 설 자리가 없다고 가르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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