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에 사랑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못내 궁금하다. 독신주의가 늘고 만혼이 유행하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남녀 모두에게 아직도 가슴을 신비로움과 희열에 들뜨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사랑의 마법에 걸리면 누구나 호되게 신열을 앓기 마련 아니던가.   반면 순간에 불꽃을 일으키는 짧고 강렬한 사랑일수록 위험한 요소를 지닌 게 사랑이기도 하다. 그 뜨거운 정염 속에서 다시금 냉정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런 사랑은 깊이가 없을 뿐 만 아니라 즉흥적인 감정 발로로 유희적 사랑 놀음에 빠질지도 모른다. 옛말에 “ 쉬 더운 방이 빨리 식는다.” 라는 말도 있잖은가. 더구나 여자일수록 그런 사랑은 선택에 앞서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는 여인의 일생을 지배하는 일 중에 어찌 보면 사랑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일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자로서 행복, 불행이 아직까지도 상대 남자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면 왠지 억울한 면도 없잖아 있다. 요즘은 여성들도 남성 못지않게 높은 학력과 능력을 지니고 있잖은가.   전과 달리 성차별의 그늘은 많이 걷혔다고 흔히 말한다. 이런 현실이지만 여성은 여전히 강한 힘을 지닌 남성에 반하여 힘의 논리를 따진다면 약자 입장에 처해 있는 게 사실이다.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많이 상승된 것으로 알고 있는 외국 여성들 경우도 매한가지다. 성 차별 그늘에 아직도 갇혀 있다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여성들 처지나 별반 다름없어서다. 한 권의 소설이 그 실정을 허구로나마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 더욱 현실감을 생생히 실감케 한다. 더글라스 케네디가 지었고 공경희가 옮긴 장편 소설 『위험한 관계』 라는 소설이 그것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내용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소설 주인공 토니는 신문사 해외 특파원이다. 역시 그 아내 샐리 또한 신문 기자 출신이다. 기자란 어떤 자격이 필요할까? 모르긴 몰라도 지성과 학식을 갖춰서 정론을 펼치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언론 기자 아니던가. 반면 도덕적 및 윤리적으로도 어느 직종보다 투철해야 할 신문 기자라는 직업 아니던가. 사회적인 신분과는 달리 이 두 사람은 사랑에 빠져 가정을 이룬 게 오히려 서로에겐 불행의 단초가 된 셈이다.   토니는 아내 샐리가 아기를 낳은 후 심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릴 때, 아니 그 이전 아내가 임신했을 때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혼 경력이 풍부한 연상의 여인 다이앤 덱스트와 놀아났다. 그도 모자라 샐리가 아들 잭을 출산하자 산후 우울증을 빌미로 샐리가 어머니로서 잭을 키울 자격이 없다는 죄목을 뒤집어씌우는 등 남편으로서 매우 비인간적인 음모까지 꾸몄다. 뿐만 아니라 토니는 파렴치 하게 법원에 법정 명령을 받아 아이와 집안 살림을 몽땅 싸갖고 텍스터의 집으로 갔다. 아내가 미국 형부의 장례식에 참석한 기회를 틈타서였다.   아내 샐리는 그럼에도 온갖 역경과 고난을 딛고 토니가 자신으로부터 빼앗아간 잭의 양육권을 되찾았다. 그러기까지 그녀가 겪어야 했던 숱한 심신의 고통을 헤아리노라니 같은 여성으로서 공분을 느낀다. 어디 이뿐인가. 동정심까지 일었다. 특히 아들 잭을 찾기 위해 법정에서 재판을 할 때 토니의 간교한 술수는 많은 여성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사랑의 실체에 대하여 다시금 고뇌케 하고도 남음 있었을 듯하다.   법정 증인으로 내세울 샐리를 치료한 의사며 주변 인물들까지 매수해 거짓 증언을 유도한 토니 행동을 읽을 땐 그 비열함에 치가 떨리기도 했다. 이 소설을 덮으며 차라리 남보다도 더 경계해야 할 인물이 자신의 남편이라는 사실에 샐리가 받을 충격이 짐작이 갔다. 한편 이 소설을 읽으며 ‘과연 사랑의 진가는 무엇인가? 결혼의 의미란 무엇이란 말인가?’ 라는 의문마저 지니게 됐다.   인생사를 다룬 게 소설이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런 내용의 소설은 현재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작가가 상상한 허구가 전부라고 믿고 싶을 따름이다. 왜냐면 아직도 청춘 남녀의 사랑은 순수하고 순연하여 아름답기 때문이다. 특히 언젠가 통계에 의하면 결혼한 많은 여성들 52.0%가 결혼은 꼭 해야 한다는 통계가 떠올라서다. 하긴 하루가 다르게 변화 하는 현대엔 이 통계 수치도 무색할지 모르겠다.   긍정적 시각으로 이 수치를 바라본다면 아직도 이 땅의 절반이 넘는 결혼한 여성이 결혼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인식하며 산다는 의미 아니던가. 또한 많은 기혼자 남성은 오늘도 처자식 부양을 위해 자신을 돌아볼 겨를 없이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또한 다수의 한국 남성들은 아직도 조강지처를 버리면 ‘엄청난 죄 값을 치룬다’라는 생각이 의식 속에 지배적인 게 사실이다. 이런 남성들 의식에 힘입어서 2024년 올핸 제발 젊은 여성들이 결혼에 대한 분홍빛 꿈을 가슴으로 곱게 가꾸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예식장 마다 선남선녀들의 결혼식으로 웨딩마치가 우렁차게 울리길 감히 바람해 보는 이즈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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