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어른 들이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들을 하곤 했다. 그냥 농담삼아 하는 말이거나 어쩌면 자식 없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말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하고, 자식 낳고, 늙어가면서 점차 그 말의 속뜻을 알 것 같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라는 말도 흔히 들었던 말이다. 이 말도 공감이 간다. 자식은 부모의 분신이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 자식이 나에게 잘 하던, 못하던 간에 그 사랑은 본능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요즈음 부모들 사이에서 들리는 말이나, 매스컴을 통해서 들리는 말들은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 많다. 물론 ‘내리 사랑 열이면, 칫 사랑은 하나이다’ 말도 있듯이 자식의 부모사랑이 부모의 자식사랑을 따라갈 수는 없다. 그것은 상식이고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요즘은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다는 것도 상식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부모의 유일한 삶의 터전을 빼앗고서 부모를 내치는 일은 상식이 아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 간의 증여재산 반환소송이 사회문제화 되는 것이다. 이처럼 부모 자식 간의 소송은 흔치 않은 일이지만, 남에게 말 못하는 가슴앓이를 하며 사는 부모들은 너무도 많다. ‘잘 나가는 아들은 내 아들이 아니고, 빚진 아들은 내 아들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자식들은 부모에게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전화하고 찾아온다. 잘 나가는 자식들은 부모 곁에서 얼정 거리지 않는다. 기껏해야 생일날이나 어버이날에나 전화하고 ‘돈 보냈으니까 맛있는 것 사 잡수셔요’ 한다. 그 정도면 그래도 좋은 자식이다. 직장 핑계 대고 못 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그렇다. 어린이날은 공휴일인데 어버이날은 공휴일이 아니다. 그러니 올 수 없다는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집안에서 왕이다. 옛날에는 어른들 중심이라 아이들은 소외되고 대우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파 방정환 선생님이 아이들을 불쌍히 여겨서 어린이날을 제정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가정에서 제 일 순위가 자식이다. 365일이 다 어린이날인 셈이다. 이제는 어린이날이 따로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고 반대로 어버이날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공휴일로 지정하면 겨우 자식들의 얼굴을 한 번 더 볼 수 있을 것 아닌가. 언제부터인가 노인들 사이에서 아들집에 함부로 찾아가서는 안 되고, 전화도 걸어오면 받지만, 먼저 걸지는 말라는 이야기들을 한다. 부모들은 평생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살았다. 물론 그렇지 못한 부모들도 간혹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부모들은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최선을 다해서 키운다. 외국의 경우는 일정 나이가 되면 홀로 독립해서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결혼시키는 것 까지도 부모가 책임져야 한다. 독일 매체 도이체벨레(DW)는 ‘ 한국은 만 18세 까지 자녀를 양육하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비용이 드는 국가’ 라며’ 한국의 저 출산 원인도 높은 양육비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한국 부모는 지난 해 자녀 1인당 국내 총생산(GDP)의 7.79배에 달하는 비용을 들여 자녀를 양육했다고 했다. 평균적으로 부모가 자녀를 만 18세까지 기르는 데에 약 3억 6500만원을 사용하는 셈이다. 이는 중국(GDP 6.9배), 일본(GDP의 4.26배), 미국(GDP의 4.11배)에 비하여 압도적으로 높다고 했다. 이처럼 혼신을 다해서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나면 부모에게 남는 것은 거의 없다. 부모 자신들을 위한 노후대책은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자녀가 노후에 부모를 부양하는 것도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입이 없는 노후생활은 정부에서 주는 최저 생계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벽에 거리에 나가보면 노인들이 폐휴지나 빈병 같은 것을 모으러 다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식이 없었으면 그처럼 힘든 노후생활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털어버릴 수가 없다. 벌써 몇 년 전부터 정부가 저 출산 대책을 마련하느라고 급급하다. 국가의 미래가 달린 일이니 총력을 다 하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출산 수당, 육아휴직 등 아무리 그럴듯한 조건을 제시해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3년 9월 인구 동향’에 따르면 2022년 9월 대비 출생아 수는 오히려 14.6% 감소했다는 결과에서 알 수 있다. 우리 세대는 ‘셋만 낳아 잘 기르다’라고 하는 슬로우건 아래 정부가 산아제한을 주도하던 시대에 결혼을 했다. 그래서 우리 친구들이나 형제자매들은 거의 다 자녀가 셋이다. 난 직장에 다녀야했기 때문에 둘 만 낳았다. 솔직히 그때 하나 더 낳았으면 했지만 친정어머니가 둘 이상은 더 돌봐 줄 수 없다고 딱 잘라 거절하는 바람에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에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고, 조금 더 지나니까 ‘아들, 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남성들은 무료로 정관수술을 해 주고 수술을 받은 사람은 예비군 훈련을 면제해 주는 제도가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프랑스에서는 아이를 낳으면 보상을 하고 여러 가지 혜택을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이상한 나라도 있구나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서양에서는 이미 인구부족 현상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 구세대 부모들은 가난해서 자식들을 배불리 먹일 양식도 없으면서도 왜 그리 많이 낳았을까? 한 마디로 미련해서인 것 같다. ‘아이들은 자기가 먹을 양식은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무슨 근거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또 ‘딸은 살림 밑천’이라고 했고, ‘아들은 노동력의 확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네에서 아이들이 싸워도 형제 많은 집 아이들이 이긴다고 하며 자식을 욕심대로 다 낳았다. 사실 그 시대에는 산아제한도 실제로 어려웠던 때이기도 하다. 지금 젊은이들은 부모세대처럼 미련하지 않다. 많이 배웠고 똑똑해서인지 자녀를 낳아서 받는 혜택보다 자녀가 없어서 얻는 이득이 더 크다는 것을 이미 파악한 것 같다. 자식이 있으면 부모가 많은 희생을 해야하며 그렇게 힘들게 키워 놓아도 성장하면 부모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자식이 없어서 노년에 좀 외롭더라도 평생 자식 때문에 힘들게 고생하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 하에 ‘무자식 상팔자’를 선택한 것이 아닌가? 지금 젊은 세대의 대부분은 오직 나 중심으로만 살아간다는 철학을 가진 세대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자식은 어려서 품안에서 재롱부리며 부모를 웃게 해 준 것으로 효도를 다 한 것이란 말이 꼭 맞는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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