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는 단순한 반공전쟁영화가 아니다. 갑자기 몰아닥친 6.25의 비극적 현장 속에서 동생 진석(배우 원빈)을 구하기 위해 전장으로 나간 형 진태(배우 장동건)와 그 가족들이 겪게 되는 불운과 고난을 다룬 휴먼 드라마다.    이 영화에서 태극기는 고지를 향해 돌진하는 병사들을 내모는 독전용 깃발로 나오지 않는다. 유해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형 진태의 유골을 고이 감싸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포용의 보자기로 등장한 것이 바로 태극기다. 사실 형 진태는 국군이 아니라 인민군으로 전사한 비운의 주인공이었지만, 이 때 태극기는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는다. 원래 진태와 진석이 끔찍이 사랑하는 형제였듯이 남과 북을 하나의 형제애로 따뜻이 품어 안는 화해의 상징으로 태극기가 사용된 것이다.최근 태극기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과 인식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양분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태극기는 나라의 상징이요 애국심의 발로인 만큼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게 대다수 국민의 인식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태극기나 애국가 등 국가상징에 대한 의례를 강요하는 것은 전체주의 또는 국가주의를 조장할 위험이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여기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일부 극우세력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세우며 자신들만이 순수 애국세력인양 처신한 데 대한 반감도 일부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필자의 세대는 매일 오후 6시만 되면 가던 길을 멈추고 국기하강식에 참예하던 때를 기억한다. 당시 국가는 무조건적 선이었고 이를 상징하는 태극기는 경배의 대상이었다. 대학생은 물론 고등학생들도 남녀 구분없이 교련복을 입고 군사훈련까지 받았다. 마치 당장 전쟁이라도 날 것 같은 숨막히는 군사동원체제였다.    하지만 이런 국가우상주의, 군국주의는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그런 억압과 통제의 시대로 회귀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가의 상징인 국민의례 자체를 부정하고 회피하려는 움직임도 일부 나타나고 있어 우려되는 바 크다.그 대표적인 사례가 국민의례 대신 민중의례만을 하는 행태다. 우리 시청 노조도 수년간 그런 관행이 지속되어 오고 있어 필자는 공무원들이 국민의례를 하지 않는 것은 국민들 보기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시정조치한 바 있다. 국경일 태극기 달기운동에 국민들의 참여가 극히 저조한 것도 유감스러운 일이다. 국경일이 되면 거리마다 태극기를 내걸고 태극기 나누어주기 캠페인을 하는 등 다양한 국기사랑 행사를 한다. 이통반장을 통해서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도록 독려를 하고 마을별 경쟁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결과는 늘 실망스럽다. 공동주택의 경우 한 라인에 겨우 한두 집만 태극기를 달 정도로 호응이 저조하다. 미국은 수많은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대표적인 다인종 다문화국가다. 피부색과 문화로 보면 국가적 정체성 내지 통일성을 유지할 기반이 매우 취약한 나라다. 그럼에도 미국인들보다 국민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강한 나라는 없다. 무엇 때문일까? 필자가 보기에 국가적 상징체계를 잘 활용하기 때문이다.    그 첫째가 국가유공자에 대한 보훈이다. 세계경찰국가를 자임해 온 미국은 세계 곳곳의 분쟁에 개입하여 수많은 희생을 치루었다. 미국의 작은 도시 어디에 가더라도 도심 가장 좋은 자리에 위령탑이 있고 그 지역 출신의 전몰 영혼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제대군인들을 위한 병원과 연금제도도 잘 갖추어져 있다. 나라를 위한 희생, 반드시 지켜주고 보상해 준다는 믿음이 있다.둘째는 스타즈 앤 스트라잎스(Stars and Strips)라 불리는 성조기다. 관공서, 학교, 국경 뿐 아니라 미국 어디를 가나 높은 국기게양대에 커다란 성조기가 힘차게 펄럭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위대한 나라 미합중국이요 여러분은 이 땅의 자랑스러운 주인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국가 공식행사뿐 아니라 사적인 패션 디자인에도 성조기 문양이 다양하게 활용되어 애국심을 일깨워 주고 있다. 셋째는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제목의 미국 애국가이다. 미국인들은 각종 행사에서 무시로 이 애국가를 즐겨 부르며 미국의 영광을 찬양하고 기원한다.    어디 미국뿐이랴. 대부분의 선진 자유국가들이 이러한 국가상징체계를 적극 활용한다. 유럽대륙을 가보라, EU로 통합된 유럽이지만 자국의 영토임을 알리는 국기가 EU기보다 더 크고 높게 휘날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국기와 국가는 봉건시대 때부터 피아를 구분하고 소속감과 일체감을 드높이는 상징이었기에 시대가 변했다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경주 황성공원에 대형 국기게양대를 세우고자 한다. 김유신장군 동상이 있는 독산 정상을 후보지로 생각하고 있다. 왜 황성공원이냐면 그곳이 시민들 눈에 가장 잘 띄는 곳이기 때문이다, 충혼탑과 임란의사추모비, 월남참전유공자비. 김유신장군 동상이 있는 역사적 상징성도 고려했다. 구체적인 높이는 중요하지 않다. 시민들이 멀리서도 볼 수 있는 적당한 높이면 된다. 굳이 의미를 더하자면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대왕이 제30대 왕이니 30m(독산 높이 포함 50m)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다. 시민여론도 대체로 긍정적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물론 반대하는 분들의 의견도 존중한다. 하지만 국기 게양대 하나로 애국심을 드높일 수 있느냐고 시비를 건다면 세상에 할 일이 아무것도 없어진다. 시민 애국심 함양과 호국성지로서 경주의 명성을 드높이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나섬이 옳다. 힘차게 휘날리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이 땅의 민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장렬히 희생하신 선열들을 생각하고 삼국통일을 이루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자랑스러운 화랑의 후예로서 남다른 사명감을 되새길 수 있다면 이 또한 값진 일이 아니겠는가. 신성한 태극기가 갈등과 분열의 빌미가 아니라 포용과 화해의 상징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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