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회자 된 ‘조사하면 다 나온다.’는 말은 조사할 것이 있으나 조사하지 않으면 안 나오지만 조사하면 나온다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특정 종교에서 모든 인간에게 원죄(原罪)를 상정하고, 회개(悔改)를 율법화 (律法化)하였듯이 지은 죄가 있든 없든 간에 유무죄(有無罪)의 판단과 결정은 특정 권력자의 의지일 뿐이라면, 사법부가 따로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 같고 법치(法治)를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것이다.   입법, 사법, 행정이 분리되어 있지 않았던 이씨조선 왕조시대에는 일 개 고을의 목민관(牧民官)조차도 주민들의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가질 만큼 절대 권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안다. 동헌 마루에 높이 앉아 있는 사또가 일갈하되, ‘네 이놈~ 니 죄를 니가 알렸다!’ 그러니까 변호인도 없는 단심 (單審)재판에서 ‘저 놈을 매우 쳐라!’ 하는 사또의 명령만 떨어지면 즉석에서 피의자에게 형벌이 가해지는데, 그 모진 형벌을 견디지 못한 피의자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알든 모르든 간에 그냥 죄를 시인하지 않기는 어려웠을 터이다.   조선말엽 권력자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가 극에 달했던 시절, ‘내 눈에 보이는 것 어느 하나도 성한 것이 없구나!’라고 탄식했던 ‘다산 정약용’이 낙향하여 많은 저서와 명언들을 남겼는데, 그중에 특히 내 눈에 띄는 말이 있으니 ‘한 번 배불리 먹으면 살찔 듯이 여기고 한 번 굶으면 여윌 듯이 여기는 것은 천한 가축이나 그러한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은, 아침에 햇살 받는 곳은 저녁에 먼저 그늘지고, 일찍 피는 꽃은 일찍 지기 마련이다’라 했고 또 ‘내가 인간이면 모든 인간이 나와 같아야 한다. 때문에 인간은 평등하며 서로 존중해야 한다.’라고 했으니, 인간의 이성(理性)이 시대에 따라 달라질 것이 없음을 알게 한다.   지금 우리는 전제군주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일부 사람들이 권력은 자신들의 것이고, 특정 무리에 속한 자신들은 보통사람들과는 다른 인종이기 때문에 평등할 수 없으며, 따라서 법도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조선시대에 ‘연좌제(緣坐制)’라는 것이 있었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반국가사범 즉, 역적죄인은 본인뿐만 아니라 그 일가를 비롯해 삼족(三族)을 모두 멸한다는 것인데, 지금 이 지구상에서 무슨 이념과 체제를 가진 나라이든 아직도 연좌제를 시행하는 야만국가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누가 피의자로 지목되기만 하면, 그 가족 모두는 물론 주변인들까지 함께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왕조시대 때 보다 더 엄중한 연좌제가 되지 않을는지?   이는 비단 법치를 강조하며 형벌권을 행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알 권리를 강조하며 자신에게 거슬리는 타인, 심지어 그 주변인들에게까지 연좌제를 적용, 보도를 빙자하여 무고한 사람을 피의자로 만들고 공공연히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있어도 처벌받지 않는 권력이 있다면, ‘조사하면 다 나온다.’는 말이 형벌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어디 한 번 털어볼까?’라는 말은 그 대상이 털릴 것이 있든 없든, 목표가 된 사람에게는 무서운 협박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협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면, 형법이란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단지 타인을 자신에게 굴복시키기 위한 흉기가 아닐까? 주방에 비치된 칼이 조리를 위한 유용한 도구이지만 그 칼로 사람을 해치면 흉기가 되듯이, 법은 우리 사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공동체의 약속이지만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법보다 더 무서운 흉기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피의자의 죄를 입증하기 위한 수사이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보도이든 간에, 조사하면 다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사해도 안 나오는 경우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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