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어렵지만 이 세상에 던져진 이상 하늘에서 주어진 생을 잘 마감해야 한다. 이것은 탐욕과 욕심이 아니라 제일 중요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살아남아야 구성원 전체가 살아남을 수 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자기 보존 제1 원리이다. 자기 보존에 대해 스피노자는 코나투스(conatus)를 통해 설명한다. 각각 사물은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존재 속에서 스스로 보존을 추구한다.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은 ‘주어진 어떤 원인에서 필연적으로 결과가 도출’되며, ‘그 본성에서 어떤 결과가 도출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실존하지 않는다’라는 인과론에 의한 근본원칙이 적용된다. 존재 보존 추구는 ‘수동적인 자기 보존’에 그칠 수 없으며, 자신의 실존 조건을 구속하고 수동화하는 경향에 맞서 원초적인 실존역량을 확대하고 능동화하는 방향으로 전개하면서 능동적인 자율 존재로, 자유를 지닌 존엄한 생명으로 이 땅에 존재할 이유를 만들어 온다. 존재 보존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려면 건강, 돈, 자유, 즐거움, 사랑, 신앙, 권력, 명예, 지혜,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가 필요하다. 맹자는 ‘식색성야(食色性也 식욕과 성욕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유한 본성)’라 했다. 먹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고 말을 하기 위해서 입이 필요하다. 또한 맹자는 ‘생계수단이 든든해야 마음도 든든해진다(恒有産 恒有心 항유산 항유심)’고 했다. 백성들이 물질적으로 부족하여 살아갈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함을 말한다. 산다는 것은 생존이다. 생존은 existence다. existere는 ex_(로 부터)와 -sistere(존립하다)의 합성어로 생활(life)과는 다른 의미성을 지닌다.너도 알지? 나는 곧 잊혀 질 거야 봄은 자꾸 가래를 끓여 올려 건물들은 서서히 마모되고 거리에 번지는 선인장 가시들 뱉어낸 가래처럼 꽃들은 폐허 위에서도 피어나 나는 그림자를 잃어 버렸어 가위로 오린 종이인형처럼 훨훨 모래바람 속으로 날아가 버렸지 먹먹한 공중으로부터 새들은 거듭 폐혈증의 울음을 전해와 서울은 잊혀진 도시야 거대한 사구들로 뒤덮여 봄도 봄이 뱉어낸 꽃들도 새들의 피울음도 기억을 잃어 조각난 유물처럼 나는 곧 잊혀질 거야 네 목소리에선 오래된 술냄새가 나는군 야릇해 내 성기가 지금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지- 김근, 「모래바람 속」 부분, 『뱀 소년의 외출』, 문학동네, 2005. 자신 스스로 서 있지 못하고 자신을 온전히 알지 못한 채, 내 던져진 “종이인형처럼” 살아가고 있다. 기껏 “종이인형처럼” 구겨진 삶은 오지도 가지도, 어딘가에 속하지 못하는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삶이다. 서걱거리는 모래바람에 봄은 가래를 끓여 올리고, 거리에는 선인장 가시들, 폐허 위에서도 피어난 꽃들, 도시는 거대한 사구들로 뒤덮였으며, “새들은 피울음”으로 ‘‘식색성야’를 전해온다. 이곳에서 생계수단이 든든하지 못한 나는 그림자를 잃(을 수밖에 없)고 모래바람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마치 ‘조각난 유물처럼’ 잊혀져 가는 존재.   죽음에조차 주인이 될 수 없는 무력한 나는 ‘코도 입도 흩날려 몽달귀 같은’ 흔적 없는 흔적을 남기며 사라져 갈 뿐이다. 이는 실체 없는 목소리 되어버린 실체가 겪는 혼란스런 상황이다. 슬퍼 할 시간과 공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어디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더구나 모래바람 속에 있는 나를 불러올 수도, 부를 수도 없는 사라진 주체,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현실은 슬픔이다. 자기 보존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사회, ‘먹먹한 공중으로부터 새들은 거듭 폐혈증의 울음을 전해와 서울은 잊혀진 도시’에서 바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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