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부는 의사들에게 빨간색 컵을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있고 의사들은 빨간색 컵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컵의 색깔이 아니라 물을 많이 담을 수 있는 컵의 기능이다.문제는 물을 많이 담을 수 있는 컵의 기능을 논해야지, 기능과는 다른 컵의 색깔로 단지 주목을 끌고 선정적인 논쟁을 하는 것은 빈 수레가 요란한 것과 같다.정부는 의사들에게 2000명 의대 증원 주장을 강요하고 있고, 의사들은 2000명 의대 증원을 강력 반대하고 있다. 둘 다 아니다. 문제는 필수의료를 살리는 것이지, “의사 수를 증원한다, 안 한다”가 핵심이 아니다.정부와 의사들은 국민들에게 잘못된 딜레마의 오류(fallacy of false dilemma)라 불리는 홉슨의 선택(Hobson,s choice)을 더는 강요하지마라. 안 그래도 힘든 국민들이다.홉슨의 선택은 17세기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마구간을 운영하며 말을 임대 해 주었던 토머스 홉슨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홉슨은 케임브리지 대학생들에게 돈을 받고 말을 빌려줬는데, 좋은 말은 빌려주지 않고 볼품없는 말들을 마구간 입구에 매어놓고 “입구 쪽의 말이 아니면 빌려 갈 수 없다”고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요구대로 하든지 아니면 말든지”라는 식이다. 예를 들면 밥을 원하는 사람에게 “빵이냐 굶느냐”를 선택하라는 식이다.이 막가파식 선택이 21세기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국민 생명과 건강 수호를 놓고 버젓이 펼쳐지고 있다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홉슨의 선택 즉 잘못된 딜레마의 오류를 강요한다면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기에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함 일 수 밖에 없다.의사 수를 증원해도 필수의료로의 낙수효과가 없다면 필수의료를 살릴 수 없고, 의사 수를 증원하지 않아도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으면 된다. 하여튼 문제는 필수의료를 살리는 것이다.의사는 돈 벌려고 하는 직업이 아니라 오직 사명감으로 해야 하는 직업이어야 한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러나 목하의 자본주의 시장은 비정하다. 사명감이나 가치관의 기준보다 개인의 이익을 쫒을 수 있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그래서 자본주의 시장원리로는 해결하기 힘드나 국민 공익을 위해 꼭 해야 할 일을 정부가 해야 한다. 정부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다. 물론 의사의 가장 큰 존재 이유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다.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정부가 공공의료에서 필수의료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금 2,000명 의대 증원 숫자 놀음으로 옥신각신 다투며 골든타임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대 이스라엘의 왕 솔로몬의 재판을 떠올리게 한다. 솔로몬 왕은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확실한 진실을 모르겠으니 아이를 둘로 갈라 나눠주라는 판결을 한다. 한 여인이 차라리 포기하겠다고 말하자 “이 여인이 진짜 어머니다”라고 선언했다.정부와 의사들은 각자 “국민의 건강을 위하는 길이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정부도 의사도 선한 의도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각자 선의로 행하였다 하더라도 지금 서로가 서로에게 백기투항만 요구하며 마주 보고 달리는 치킨게임 양상의 최악의 결과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대화없는 강대강 구도 속에 국민들은 절규하고 있다. 더 가면 모두가 파멸이다.서로를 향한 분노의 질주를 당장 멈추고 “조건 없이 만나라. 역사의 죄인이 되고 싶지 않으면 당장 만나 대화하라”. 도대체 국민의 생명과 건강 수호보다 “무엇이 중헌디?”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각자에게는 차선이나 국민에게는 최선의 결과가 되는 영혼이 있는 대화가 되기를 바란다.진짜 국민을 사랑하는 쪽은 누구인지? 상술한 솔로몬의 재판에서처럼 누가 진짜 어머니의 마음인지? 국민들은 정부와 의사들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국민을 잠시 속일 수는 있으나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정부와 의사들은 국민을 이길 수 없고 이겨서도 안 된다.이번 의료사태를 통해 그나마 얻은 것이 있다면, 우리 국민들이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근본적 문제를 심도 있게 생각해보고 그 치유 방안을 공론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이했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도 현재는 우리 모두에게 트라우마이지만 외상후 스트레스 반응이 아니라 외상후 성장으로 나아가는 위대한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한다. 정부도 의사들도 국민들도 모두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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