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색다른 취미에 따른 버릇이 한 가지 생겼다. 가끔 여유가 있을 때면 발걸음이 절로 재래시장으로 향한다. 그곳에 가면 여러 가지 볼거리와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좋다. 한편으로는 그곳 광경들이 꾸밈과 포장이 없어서 친근감마저 든다. 내가 그곳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진솔함에 끌렸기 때문이다. 이곳은 평소 가식이나 허위, 허례허식을 경계하는 나의 성향과 참으로 궁합이 잘 맞는 장소다.   오늘도 어김없이 시장엘 들렀다. 이곳은 이제는 나만의 핫 플레이스가 되어버렸다. 시장 안에만 들어서면 특유의 냄새가 풍겨와 나도 모르게 코를 벌름 거린다. 바닷가에서나 맡을 수 있는 비릿한 생선 냄새와, 고기 및 그것의 내장들을 파는 정육점 앞을 지나치려면 이것 특유의 누린내도 풍겨온다.   상인들의 거칠고 투박한 충청도 사투리로 손님과 가격을 흥정 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이 때 오고가는 정감 있고 소박한 대화에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정이 듬뿍 넘치기 예사다. “ 아주머니, 조금 만 더 주세유.” 라던가. 아니면 “ 이 양파 얼마에유? 한 개 더 주세유.” 라는 말에 뒤돌아보면 빠듯한 살림살이에 단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주부들 모습이다. 비록 남지 않는 이윤일망정 이 말을 매몰차게 뿌리치지 못하는 상인들이다. 자신의 이익보다 얄팍한 손님 지갑 사정을 먼저 헤아리는 듯 가격도 깎아주고 덤도 듬뿍 준다. 재래시장에서만 대할 수 있는 이 현상들은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는 볼 수 없는 진귀한 광경이다. 그럼에도 평소 이런 인간냄새 물씬 나는 재래시장 보다 우리는 대부분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서 물건을 구입하는 일에 익숙하다.   백화점이나 마트에 가면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는 음식들과 물건들을 단번에 사고 싶은 충동이 인다. 이는 포장에 의한 미학적인 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상품 가치는 질적 및 양적인 면에선 재래시장 물건이나 똑같다. 이는 사람과 비유를 하자면 멋있고 예쁜 사람에게 첫눈에 반하는 이치와 같다. 겉만 보고 처음엔 호감을 갖지만 겪을수록 종잇장처럼 매끈하고 냉랭한 인성에 이내 실망하는 일과 다름없다. 개성이란 그 사람만이 지닌 매력이나 인간미를 일컫는다. 이것이 없으면 그냥 일시적인 끌림에서 그칠 수 있다. 그것이 가급적 순수한 인간 본연의 모습이면 금상첨화다.   재래시장의 모습은 나에게 여러 가지 깨달음과 교훈도 안겨준다. 인간이 불행함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내 자신을 타인과 세상의 관계성에 계속 결부 시키려하기 때문이다. 이 말의 의미인 즉은 , 자신이 좋은 모습으로만 타인에게 보여야한다는 의식으로 인하여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게 그것이다. 이는 정작 내 자신의 본질을 들여다보기 보다는 타인에게 보여주는 모습에만 연연하여 일어나는 심리적 현상이다. 자신이 그것에 부합하지 못하면 괴리감과 자존감을 상실하는 게 문제다.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아름답지 않은 것에서도 미학을 발견하는 혜안을 갖춰야 한다. 즉 겉으로 보여주는 모습만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실속 있고 진정성 있는 삶은 얼마나 알차던가.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내가 재래시장에서 얻은 진리처럼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음악이 있다. 사람마다 음악을 들었을 때 느끼는 감정은 제각각 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이 음악은 겉으로는 화려하고 세련된 느낌은 아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끌리어 흔히 하는 말로 나만의 최애 음악 중 한곡이다. 이 음악을 듣노라면 마음이 편안하다. 헛된 욕망과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한 편으론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힘들고 지칠 때면 꼭 이 음악으로 위로를 받는다. 이런 감흥을 안겨주는 음악이야말로 명작이라 말 할 수 있다. 음악도 꼭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유명세를 타는 음악만이 명곡은 아니란 뜻이다.   이 음악은 유명한 이탈리아 출생 영화 음악 작곡가인 엔니오모리꼬네 (Ennio Morricone ) 가 작곡한 ‘라 칼리파 (La Califa )’이다. 엔니오모리꼬네 외에도 한스짐머 와 존 윌리엄스의 작품도 매우 좋아한다. 하지만 이 들과 비교되는 이 곡이 지닌 특성인 자연스런 서정성과 꾸밈없는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느낌에 감명 받아 이 음악을 좋아한다.   눈만 뜨면 세상은 더욱 모든 사물을 아름답게 재생산 하는 일에 주력한다. 가전제품 및 자동차 등도 보다 심플하고 예술적인 미학을 가미한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에 혈안이 돼 있다. 여성역시 아름다워야 한다면서 바비 인형처럼 날씬하라고 부추긴다. 패션계에서도 해마다 계절에 따른 옷의 디자인 및 색상 등을 내놓아 유행의 물결을 이루는 일에 분주하다. 이렇듯 유행이나 외모지상주의에 편승하지 않으려 해도 우선 타인의 눈을 먼저 의식하며 사는 게 우리들이다. 이로부터 자유로운 삶은 왠지 궁색해 보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매우 열등한 삶으로 치부되기 일쑤여서다. 이런 세태와 달리 나는 본질에 충실하고 자연 그대로 순수의 아름다움을 추앙한다. 그것이 비록 세상 잣대가 아닌 나만의 진(眞)일지언정, 꾸밈없는 수수함이면 어떠랴. 굳이 타인의 눈을 만족 시키는 미(美)에 내 자신을 맞출 필요가 있을까? 풀잎으로 내 한 몸 가려도 내면이 아름다우면 그 또한 본연의 고운 모습이다. 비록 감미로운 선율은 아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마음의 귀로 그것이 지닌 미추(美醜)와 상관없이 나만의 만족과 위안을 얻기 위하여 오늘도 이 음악을 듣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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