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모두가 연약한 존재다. 혼자 살기에는 위험한 것이 너무 많고 성공한 일보다는 실패한 것이 너무 많다. 떳떳하게 살기에는 함정이 심히 많고, 찬성보다는 반대가 아주 많다. 자신(自信)은 자기의 값어치나 능력을 믿는 그러한 마음의 자세이며, 자신감은 자신이 있다고 여겨지는 느낌이다. 필자는 학창시절에 육상선수가 된 적이 있었다. 운동경기 시합의 출전을 앞두고 코치님의 마지막 부탁은 등을 가볍게 치면서, ‘자신감을 가져라. 너만 믿는다’ 격려한다. 사실 자신이란 자기 자신을 믿으라는 것이다. 강하게 믿고 기다린다는 확신이 그 말 속에 전부 녹아있다. 사람은 항상 불완전형의 인물이라 남은 물론 자신도 위태로운 곳이 많아 실수가 잦은 편이다. 자신을 가진 사람이 사람을 영도 (앞장서서 지도함) 한다는 격언이 있다. 자신(自信)이란 마음이 확신하는 희망과 신뢰를 가지고 위대하고 명예로운 길에 나서는 감정이다. 사람이 우선 자신을 가지면, 타인의 신뢰도 얻을 수 있다. 자신(감)은 성공의 첫 단계인 으뜸의 비결이고, 자신 있는 행동은 일종의 자력(지남철의 힘)이다. 사람이 성공을 초월할 수 있듯이, 자신도 실패를 초월할 수 있다. 한 인사의 경험담에서 자신이란 내실(속이 알참)에서 우러나와야지 허세여서는 안된다고 한다. 사회학자 정범석의 ‘시행착오의 역정’에서 자신감이 지나치면 법관은 오판을 할 수 있고, 교육자는 교육의 역효과를 계산하지 못하고, 행정가는 과익을 부리며 기업가는 국익보다는 사욕에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 자신감의 저변(밑바닥)은 능력과 실력 뿐이다. 능력은 가능성이고, 실력은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이다. 자신감을 뒷받침하는 능력은 각자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제 나름대로 느끼는 감지가 있다. 우수한 능력도 기회이고, 도움을 필요로 하여 성경 말씀에 ‘빌립보’에,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에 힘입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했다. 능력은 의욕의 기초가 되고, 실력은 행동의 수단이다. 그리고 쉽사리 포기하는 절망감은 모든 희망이나 기대가 끊어진 느낌으로 모두를 다 버리는 공허한 상태이다. 이것은 낙심천만이다. 흔히들 인간은 기대에서 무너지고 뜻밖의 예상에서 낭패를 당한다. 예상은 운수나 점괘가 아니가. 어떤 일의 경과나 결과 따위를 미리 어림잡아 생각하는 것으로 추측이나 다름없다. 사람은 희망에 속느니보다 절망에 훨씬 더 속고 있다. 인간은 울어서 태어나고 실망하면서 죽는 것이 팔자(운명)인 것 같다. 그렇다면 절망을 이기는 방법은 없는가. 이런 질문에 교육상담학을 공부한 필자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세 가지를 제시하고 싶다. 첫째, 소망 (바라는 바 소원)을 가지고, 씩씩한 용기 (굳센 기운)와 취향에 맞는 신앙(종교)을 가질 것을 권면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필자는 단도직입으로 성인의 말씀인 성경을 펼쳐 그 내용을 상담했다. 구약성경 ‘욥기’ 전장을 소개한 것은 단지 필자의 경험에서였다. 말씀의 내용을 간추려보면, ‘욥기’는 10남매의 자식과 거액의 모든 재산을 잃고 시련과 고통을 당한 한 사람의 이야기다. ‘욥’은 동방의 의인으로 불리우는 정직하고 경건한 사람이다. 그는 고난과 불행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한 인간의 사연이지만 세계인들에게 심오한 감동을 주는 교훈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신앙의 위대함을 기록한 시가서에 속한 지혜문학의 하나이다. 고통이 남기고 간 것을 맛보아라. 고난도 지나고 나면 감미롭다. 큰 고통은 속히 지나가고, 오래된 고통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한다. 고통과 고뇌는 위대한 자각과 깊은 심정을 가진 자에게는 항상 필연적이다. 마음의 고통은 육체의 고통보다 훨씬 무겁다.    지금의 괴롭힘과 슬픔은 하나의 시련이다. 그 시련이 더 굳은 마음을 얻게 한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풍파와 시련을 겪은 뒤에 땅이 굳어진다. 시냇가 돌 닳듯-냇가의 돌이 물에 갈리고 작아지듯이 시련을 받는다는 의미. 고난만이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고난의 길은 길고 어둡다. 나의 고난을 참아야 남의 고통을 돌봐준다. 고난은 기도를 가르쳐준다. 고난은 불행이 아니다. 고난을 극복할 의지를 잃는 것이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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