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따라 지방으로 온지 벌써 40년이 넘었다. 서울서 태어나고 서울서 공부하고 30세가 넘어서 지방으로 왔지만, 이제 보니 여기서 산 세월이 더 길다. 그만큼 나이가 먹었다는 것이다. 난 아직도 서울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제는 분명히 시골사람이다. 정년하고 다시 서울로 가려고 생각했지만 엄청나게 오른 집값 때문에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도 또 10년이 넘게 흘렀다. 대부분의 서울서 온 동료교수들은 서울 집을 전세 놓고 여기서 전세로 살다가 정년하면 모두 서울로 가 버렸다. 또는 가족들은 그냥 서울서 살고 본인만 출, 퇴근하기도 했다. 난 왜 그런 묘수를 몰랐을까. 사실 그걸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하다보면 직장생활에 충실할 수도 없고, 또 아직도 어린 남매를 할머니한테 전적으로 맡겨 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처음 1년은 나도 직장 근처에서 세를 얻어서 살고 주말에만 서울 집으로 갔다 그런데 친정어머니를 통해 들리는 말이 가슴을 찔렀다. 아직 초등학교도 안간 딸이 할머니를 따라 아파트 반장 집에 볼 일을 보러 갔는데, 돌아오면서 할머니에게 “할머니, 저 엄마는 매일 집에 있는데, 왜 우리 엄마는 집에 없어?” 하고 묻더라는 것이다. 그 말을 들으면서 어린 딸의 마음이 너무 안쓰러웠다. 더 이상 어린 자식들과 떨어져 생활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돼서 남매를 데리고 지방으로 내려왔다. 친정어머니는 지방까지 같이 내려 올 수가 없는 형편이고, 그때는 지금처럼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시설들이 없어서 아이들은 집으로 오는 가사도우미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도 어린이들을 돌보는 시설에서 아이들을 학대하는 사례가 있듯이 그때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일이 있어서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다. 주부가 직장을 다니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참으로 힘든 일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아들은 지금도, 자기는 엄마처럼 직장 다니는 부인은 싫다고 말하는 것 같다어쨌건 우여곡절 끝에 지방에 정착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지만, 처음 내려 왔을 때는 서울과 지방과의 차이 때문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문화적인 차이가 컸다.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에게 ‘호두까기인형’을 보여주기 위하여 서울까지 올라가야만 했고, 이곳에 있는 동물원을 데려가 보니 코끼리나 기린도 없었다. 한껏 기대하고 갔던 아이들의 실망은 너무도 컸다. 그것 뿐 아니라, 좋은 물건은 찾기도 어려웠다. 그때는 서울에 있는 유명 백화점은 없었고 지방소재 조그만 백화점이 있는데, 좋은 물건을 사려면 서울까지 가야만 했다. 시장에서 과일을 사려고 해도 맛있고 좋은 과일을 찾기 어려워서 상인에게 불평을 하면 “그런 것들은 다 서울로 가지 여기까지 오지 못해요” 한다. 그렇다고 서울보다 결코 값이 싼 것도 아니다. 그런 문제들은 요즘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들 서울로 모여드는 것 같다. 지금 인구분포를 보면, 수도권의 면적은 대한민국 전체 면적의 11.8%인데, 22년 12월 말에 수도권의 주민등록 인구는 2,598만 5천명으로 이는 대한민국 총 인구의 50.5%이다. 이러한, 농촌은 물론, 지방이 소멸되어가는 심각한 현상을 위정자들은 모르는가, 모른 척하는 것인가. 권력 있는 자들의 재산권이 모두 수도권에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재산권 보호를 위한 것이 아닌 가 의심이 가는 것은 옹졸하고 불합리한 생각일까. 정치권에서는, 특히 선거철에는 한결같이 전 국토의 균형적인 발전을 외치면서도 실제로 진행되어가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않다. 기껏 행정수도를 만들어 놓고도 서울까지 출, 퇴근 버스를 운행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젓지 않을 수가 없다. 물론,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처음에는, 우선 국가가 할 수 있는 명문 국, 공립 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병원, 국가기관 등을 지방에 이전하여 지방근무 인센티브를 준다면 서서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난 11월 동창회 모임에 참석하기 위하여 서울 압구정역에 있는 H 백화점 앞을 지나게 되었다. 아직 11월 초인데도 백화점 정문에 보기에도 황홀한 크리스마스 추리가 장식되어 있었다. 백화점 안에는 어떻게 장식되어 있을까하는 호기심이 발동되어서 안으로 들어 가 보았다. 역시 지방 백화점에서는 볼 수 없는 멋있는 장식이 되어있었다. 온 천정에도 화려한 네온사인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줄 곳 그 생각을 했다. 왜 아직도 지방 사람에게는 서울사람과 같은 교육적, 문화적 및 기타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지지 않은 것인가.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 비싼 주거비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에만 모여 살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닌가. 이는 전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슬로건에 어울리게 국가 정책적인 차원에서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할 문제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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