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경주의 대릉원과 안압지가 발굴되고, 석굴암과 불국사가 복원 정비되면서 보문관광단지가 함께 개발되던 그때 그 시절엔, 학생들의 수학여행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신혼여행지이기도 했던 경주였다.더구나 밤 12시만 되면, 우리나라 거의 모든 도시에 전기불이 꺼지고 통금이 실시되어, 혹 통금위반에 걸리기라도 하면, 가차없이 범죄인 취급을 받으면서 유치장 신세를 면치 못했던 그때 그 시절에도, 경주만은 통금이 없는 관광특구라는 특혜의 축복받은 도시로 관광객과 취객들로 불야성을 이루던 시절이 있었던 것 같다.내 기억으로도 당시, 포항이나 울산에서 술을 마시다가, 여흥이 못내 아쉬울 때는 자정을 넘기기 전에 경주로 피신하여 2차를 즐기고, 날이 샐 무렵에야 팔우정으로 가서 속풀이 해장국을 먹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경주의 팔우정 로타리 해장국 골목은, 통금이 있던 그때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지만 지금은 모두 철거되고 한 두집만 남아 있어 아쉽다.그처럼 경주는, 천년의 신라 역사는 차치하고, 근래의 역사만 되돌아봐도 나에겐 연애와 결혼 그리고 경주시민으로 정착하게 되는 과정 등의 많은 스토리텔링을 간직한 추억의 고장이 아니었던가 싶다.그런데 경주의 특수는 계속되지 않았다. 제 3, 4공화국을 거쳐 제 5공화국으로 넘어오면서, 전국의 통금도 해제되고 국민소득이 크게 높아지면서, 사람들은 주로 관광버스나 기차를 타고 가는 진부한 관광에 만족할 수 없었고,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제주도로 그리고 해외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이유가 어디 그뿐이겠는가? 해방 이후 한 시골마을에 불과했던 경주가, 고도복원사업이 시작되며, 관광특수와 함께 도시개발에 따른 지가 상승이 겹쳐, 그런대로 먹고 살만해진 토박이들은 상당히 배타적인 성향을 들어내기 시작했고, 관광객이 흘려주는 소소한 수입 따위에만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만심과 함께 원래 토종 경상도 무뚝뚝이의 본고장다운 기질들이 한데 어우러져, 외지인들에게는 매우 불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관광지로까지 인식되기에 이르지 않았나 싶다.거기에 비해, 타 지방 도시들은 어떤가? 신라왕관이나 석굴암, 불국사만 울궈먹으려는 경주시와는 달리, 레저욕구가 강해진 관광객들의 취향에 맞는 다양한 관광상품을 개발하여 여행객들의 발길을 자기 지역으로 돌리게 하였다는 사실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이제 세계적인 관광의 추이는, 보는 관광보다는 즐기고 체험하는 쪽이다. 그리고 반드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이 필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거의 애환이 서린 달동네를 찾는 관광객들, 별미를 쫓아 어촌을 찾는 여행객들, 휴식을 위해 깊은 계곡이나 숲을 찾는 야영객들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이때에, 경주는 아직도 신라 천년의 숱한 이야기들은 잠재워 놓은 채, 깨어진 기왓장과 녹쓴 왕관만으로 호객하고 있는 꼴이라니....관광객은 오라고 해서 오지 않으며, 자기가 오고 싶어야 오지 않을까? 언젠가 한 번은 경주시가 운영하는 사이트에 관광의 트렌드 변화를 좀 지적했더니, 어느 시청직원이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지 말라`는 모욕적인 댓글을 달았기에 `경주에는 쥐뿔을 아는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하며 나는 반평생 이상이나 고향처럼 생각했던 경주에 대한 미련, 그리고 내 개인적인 숙원이기도 했던 천년 역사 AR(가상현실) 복원사업을 접기로 했던 기억이 새롭다.나와 좀 친한 외국인 한 사람은 경주를 둘러보더니 “경주가 히스토리 사이트인지는 몰라도 리메인(유적)이 별로 없는 곳”이라 평했다. 우리 한반도에 신라 천 년의 역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겠기에, 문화관광도시라는 자긍심에만 매몰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희박한 인구밀도와 쾌적한 자연환경이라는 장점을 살린 위락관광 힐링사이트 내지 첨단과학 문화도시로 거듭나길 기대해 보지만, 천년 후에나 전국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경주인들의 생각이 바뀔지 모르겠다. 기존 문화를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내일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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