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빌딩을 짓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 그러나 빌딩을 무너뜨리는 것은 한 순간일 뿐이다. 병원에서 어떤 환자에 대해 대 수술을 시행할 경우, 반드시 집도의(執刀醫)가 있을 것이며, 보조의(補助醫)가 있고, 또 수술과정을 돕기 위한 간호사도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수술이 잘 못 되어 환자가 사망했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수술을 지휘해야 할 집도의는 보조의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보조의는 또 간호사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말이 되는 것인가? 뿐만 아니라 당연히 건강한 사람이 수술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인데, 환자가 건강하지 못해 수술 도중 사망한 것이라고 하면 그것도 말이 되는 것인지?   지금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지경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요즘은 말이 안 되는 말을 말같이 하며, 말을 좀 말같이 하라는 사람들의 말을 말이 많다고 몰아붙이는 일이 너무 많아, 말 같은 말을 하기가 두려운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인류 역사에 명멸했던 모든 국가나 문명은 그 구성원들의 집단 지성이 합리적 방향성을 가질 때 번성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곧 쇄락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단군 이래 오천 년이라고 하지만, 이 땅에 사는 주민들은 그대로일지라도 수많은 왕조가 번성과 몰락을 거듭해 왔다. 그런데 왕조가 망한 데는 외침에 의해서라기보다 대부분 아둔한 군주의 비상식적 행보에서 그 첫 번째 원인을 찾게 된다.   지금은 군주가 백성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던 그런 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시적으로 위임받은 권력에 취해 스스로 제왕행세를 하려드는 사람이 있으니, 지금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가 과연 이대로 유지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첨예한 이념 대립을 하던 냉전시대는 지나가지 않았는가?    공산주의의 종주국이던 구 소련연방이 붕괴되었고, 그 뒤를 이어가는 듯한 중국 역시 일당 정치 체제를 제외하고 보면 현재 그들의 경제체제가 자본주의와 어떤 차이를 가질 수 있는지 모르겠고, 왕조가 아니면서도 3대 째 위정 세습이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 유일의 이상한 집단이 반도 북쪽에 있긴 하지만, 그들이 내 건 국호처럼 민주주의 공화정 체제라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과연 진정한 공산주의 국가라 할 수 있을는지? 즉, 공산주의란 한 때 지구상에 유행했던 감염병 천연두처럼 사실상 시험에 실패하여 사라진 정치이념으로 보이는데, 요즘 우리 사회에 새삼스럽게 등장한 반공, 멸공 이데올로기를 보면서, 지금 우리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가? 라는 시공의식의 혼란을 느낄 때가 많다. 이 나라의 국민으로 살기가 왜 이리 피곤할까? 그렇게도 열심히 쌓아올렸던 공든 탑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가는 것을 보면서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라는 이야기의 줄거리가 연상된다. 대어(大魚)를 잡기란 어렵지만, 잡아놓은 고기는 상어 때의 밥이 되고, 노인은 뼈다귀만 앙상하게 남은 큰 고기의 잔해를 버려둔 채, 피로에 지쳐 깊은 잠에 빠져 들게 되는데,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그다지 다르지 않아 보인다는 얘기다. 말인지 막걸리인지 방귀소리인지도 모를 잡음들을 뱉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제발 그 입 좀 다물라!”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입으로 짓는 구업(口業)이 곧 만 냥의 빚이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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