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은 절기상으로 한식(寒食)이다.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로 청명절 전후의 날이다. 음력으로는 대개 2월이 되고 간혹 3월에 이르는 수도 있다.    양력으로는 4월 5•6일 경에 해당되며, 예로부터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4대 명절의 하나로 일컫는다. 옛 시절에는 이날 종묘(왕실의 사당)와 각 능원(산소)에서 제향(제사)하고 성묘하는 날이다. 성묘의 습관은 중국 당나라에서 신라로 전해진 풍습이라 한다. 특이한 사항으로는 한식날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이유는 옛 습관에서 온 것이라 한다.풍습은 풍속과 습관으로 한식의 기원은 중국 진나라의 충신 ‘개자추’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함이라 한다. 전설의 시작은 개자추가 간신에게 몰려 깊은 산속에 숨어있었는데 문공(文公)이 그의 충성심을 알고 찾았으나 산에서 내려 오지 않았다. 개자추를 만나기 위해서 산에 불을 놓았다. 결국 그는 나오지 않고, 불에 타 죽었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그를 애도하여 찬밥 (한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우리나라 농가에서는 그때부터 농작물에 씨를 뿌리는 날이 되어 농사일이 시작된 시기라 한다. 풍속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생활에 관한 사회적 습관인 풍기로 전통을 이어받은 나라로 전수된 것이다.   중국 고사에 ‘지산지절’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지산(산이름)의 절개라는 말로-굳은 절개와 자신의 신념에 충실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개자추`의 고집과 비슷한 얘기로, 중국 요나라 임금께서 한나라의 ‘설방’(사람 이름)을 조정에 정계 요직으로 임명했지만 거절하여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양하고, 지산에 은거 하면서 절조를 지킨 이야기다. 모든 사람들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성질(품성)인 성격이 있다. 착하게 사는 선(善)이 있고, 모질게 사는 악(惡)이 있다. 앞서 얘기한 한식의 재자추와 ‘지산지절’의 설방의 고집은 서로 유사한 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만을 내세워 굴하지 아니하는 성질인 고집이 있고, 억지가 아주 심한 옹고집도 있다. 그리고 남의 제의나 요구를 받아드리지 아니하고 물리치는 거부하는 거절이 있다. 고집이 센것은 인간의 마음이 쉬는 본원적인 충동의 하나라한다. 더욱이 고집은 어리석지 않다고 우기는데 있다.그래서 고집과 혐오(싫어하고 미워함)는 맞붙어 다녀서 고집이 실책을 낳는다. ‘팔만사천대장경’에 치우친 고집은 영원한 고질병이라 했다. 집념이 강하면 고집이 나타나기 쉽고 마음 속에 응어리가 생긴다. 딱딱한 나무와 강한 강철은 휘어지지 않고 잘 부러진다. 사람의 성격도 마찬가지라 한다. 자기의 강한 주장이나 고집은 아름다움보다 미움이 더 많이 따른다.    때문에 여기에는 설득력이 뒤따라야 동조자도 생기고 동지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속담에 길로 가라 하니 메(산)로 간다-유리하고 편한 방법을 가르쳐 주었는데도 그대로 하지 않고 굳이 제 고집대로 하는 사람을 두고 이름.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고집불통 뿐이다. 성격이 강직하고 성미가 깔밋한 사람은 지조가 곧고, 옳은 일을 지키어 뜻을 굽히지 않는 굳건한 마음(태도)을 가진 자를 절개가 굳다고 한다.조선시대 역사의 한편으로 세조 때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여 처형 당한 여섯 분의 사육신이 있었다. 그리고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에 불복하여 평생 야인으로 지조(곧은 뜻과 절조)를 지키며 살았던 여섯 분의 생육신들은 그들의 절개가 만인에게 알려졌다.일생을 님을 그리며 살다간 무명의 한 시인은 나의 님 향한 뜻이 죽은 후면 어떠할지/상전이 변하여 벽해(짙푸른 바다)는 되려니와/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또 한편의 시조에,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 다 보내고/ 낙목 한천에 네 홀로 피었는가/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 뿐인가 하노라.//깊은 정감이 가면서 애절한 느낌도 든다. ‘오상고절’이란, 굽히지 않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라는 뜻으로 국화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논어’에 소개된 것으로, 엄동설한이 되어야 소나무와 전나무의 절개를 알 수 있다 하여 겨울 소나무가 절개의 표본이 된 것이다. 절개는 선비의 넋이라 한다. ‘만고청절’이라. 이것은, 만고(萬古)는 아주 오랜 옛적이요, 청절(請節)은 깨끗한 절개나 절조이다. 옛사람의 절개나 절조는 곧 그들의 생명으로 판정된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