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어머니를 모시고 대구의 역사적인 장소인 청라언덕과 근대골목거리를 가보게 됐다. 청라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선교사들의 사택을 지나 멀리 보이는 제일교회와 계산성당을 보며, 종교나 국적에 관계없이 우리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가분들의 위대한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청라언덕을 지나 3.1 만세운동길을 걸으며 3.1 만세운동에 호응해 1919년 3월 8일 대구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의 현장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3.1 만세운동길을 지나 근대골목거리에 들어서니 이상화 시인과 서상돈 선생의 고택이 보였다. 고택들에는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분들의 얼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3.1 만세운동으로부터 시작된 독립에 대한 열망을 계기로 1919년 4월 11일, 국내와 연해주, 상하이에 있던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국호를 대한민국이라 정하고 민주공화제 형태를 채택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1920년대 들어 임시정부 내에 발생한 외교독립론과 무장투쟁론의 갈등을 딛고, 임시정부는 1930년대에 한인애국단을 결성해 이봉창 의사의 일본천황 폭탄투척 의거와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공원 의거 등 많은 활동을 통해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독립에 대한 의지와 열망을 널리 알렸다. 1940년대에 일제의 탄압과 감시가 점점 심해짐에 따라 임시정부는 일제의 눈을 피해 상하이를 떠나 난징, 광저우, 충칭 등으로 계속 옮겨가게 됐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임시정부는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조직했다. 한국광복군은 다른 나라들과 연합군의 일원으로 다양한 작전을 수행했으며, 마지막에는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했지만, 일제의 패망으로 아쉽게 이뤄지지는 못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민들이 가졌던 자주독립국가 및 민주공화정에 대한 열망과 하나 돼 어려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정신은 지금까지도 계속 계승되고 있다. 이러한 열망과 정신은 계속 이어져 독립 이후, 다양한 민주적 항쟁을 통해 우리나라는 민주주의를 쟁취해 냈으며, 금모으기 운동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IMF 경제위기를 이겨내기도 했다. 2024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5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국내외에서 자신을 불살라 독립운동을 하신 이름없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분들을 기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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