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활론적 순수 본질 측면에서 살펴보면 무생물도 생물처럼 자라고 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모든 물질은 신성으로 충만해 있다는 내면에 대한 상상력이다. 미시세계로 들어가 범주에 들어있는 서술어들을 떼어내고, 표면에 나타나 있는, 이름 뒤에 숨어 있는, 최초 근원에 대한 이미지를 찾아내기 위한 상상력은 어둠(玄)이다. 玄(검을 현)은 본래 가물거림을 뜻하며, 검은 실을 묶은 모양을 본떠 ‘검은 실’을 나타내며 깊다는 뜻으로 쓰인다. 머리 속에 아주 작은 생각이 일어난 상태와 같이 실이 가늘어 하늘거리듯 하늘이 아득하여 가물가물하므로 볼 수 없는 검은 빛으로 쓰이게 되었다. 때문에 ‘검을 현, 하늘 현, 아득할 현’이라고도 한다.   또한 현(玄)은 잠장(潛藏 몰래 숨음, 몰래 숨김)을 의미하기도 한다. 맑은 공기는 냄새가 없고, 맑은 물은 그 맛이 없으며, 투명한 창문은 햇빛을 가리지 아니하니 한 생각이 없으면 너와 내가 따로 없다. 여기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시종(始終) 구분 없어 무궁한 것이다. (-이윤숙 외, 『종요의 대서사시 천자문 역해』, 경연학당) 어둠에 대한 상상력은 현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둠 속에서도 운동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질 깊은 곳에 검은 꽃들이 피어있다. 그러나 이 꽃들이 밖으로 나오면 붉은 눈을 가진 동백이 된다. 붉은 눈을 가진 동백은 육체, 감각, 감성을 환기하는 이미지이다. 마침내 사자가 솟구쳐 올라/ 꽃을 활짝 피웠다/ 허공으로의 네 발/ 허공에서의 붉은 갈기// 나는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만 한다/ 바람이 저 동백꽃을 베어물고/ 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 송찬호, 「동백이 활짝,」 전문. 『붉은 눈, 동백』, 문학과지성, 2001, 26쪽. 동백 붉은 꽃과 까맣게 익어간 꽃씨는 근원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다. 붉은 꽃이 근원적인 사물의 나타남이라면 까맣게 익어간 꽃씨는 근원에 대한 신성한 본질에 대한 세계로 대지와 하늘, 실체와 형식을 나타나게 하기 때문이다. “허공으로 네발/ 허공에서의 붉은 갈기”를 휘날리는 “사자”처럼 “솟구쳐 올라” 있을 때 “문장을 완성해야만 하는” 것은 이 둘이 서로 일치할 수 없는 숙명으로 물질적 인과율과 형식적 인과율 관계를 가지지만 육체성을 통해 하나로 연결하려는 시도이다. 이 시도는 꿈을 꿀 때 가능하다.   이는 명상하기 전 꿈을 꾸는 것과 같다. 의식된 전경에 앞서 모든 풍경은 하나의 꿈을 꾼 경험에 의해 나타난다. 꿈에서 본 풍경만이 아름답게 남아 정열(passion, 수동태)을 가지도록 만든다. 때문에 “땅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어서 문장을 완성해야”하는 것은” 능동성으로 통일성을 갖기 위함이다.   어떤 풍경에 대한 통일성은 여러 번 꿈꾸었던 꿈의 목적을 이룸으로 드러난다. 「동백이 활짝」에서 나타난 꿈꾸는 듯한 환상적인 풍경은 여러 가지 형태의 생김새와 골격으로 가득 차 있는 육체, 감각, 감성으로 하나의 액자가 아니고, 부풀어 올라 하나의 물질이 되기 위한 것이다.   이 땅에 기어이 봄은 찾아왔고 물, 불, 흙, 공기에 의해 여기저기 봄꽃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물, 불, 흙, 공기 4원소 이미지는 인간을 구성하는, 인간을 낳은 뿌리 은유이다. 송찬호는 물, 불, 흙, 공기라는 뿌리 은유를 통해 존재 본질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 4원소 힘과 운동은 내적 자기 갱신(육화)를 거쳐 구체적인 물질의 형태(형상)을 산출하기 때문이다. 형상 단계에서 우리는 상상을 통해 다시 바탕으로 돌아갈 수 있다. 여기서 ‘상상’이란 바로 형상을 넘어 질료에 대한 힘을 느끼는 단계임을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에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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