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설 필사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필사 작품으로써는 학창시절 감명 깊게 읽었던 김승옥 소설가 소설 「무진기행」과 김호운 소설가 작품 「사라예보의 장미」이다. 이 소설을 옮겨 쓰기 전 일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수필, 평론에 이어서 소설가로 문단 입문을 해볼까?’참으로 엉뚱한 욕심을 부렸다. 그러나 이내 이 마음을 고쳐먹었다.    소설가로 등단을 하기엔 너무 시기적으로 늦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편으론 요즘 가슴이 걸핏하면 무미건조해지기 일쑤여서다. 무엇보다‘문학 창작의 중요 요소이기도 한 감성이 메마른 상태에서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을까?’라는 기우가 첫째 이유이기도 하다. 더구나 소설은 엉덩이 힘으로 쓴다고 하잖은가. 단편 소설 경우 원고매수 80여 매, 중편 소설인 경우 200 여 매 등을 쓰기엔 체력의 한계를 느껴서다. 하긴 문학에 무슨 나이가 필요하랴만, 이젠 무슨 일에 도전하기가 왠지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문단 입문 30 여 년에 이르는 연조다. 지난 젊은 날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 편지 쇼 및 문예 대회에 도전 하느라 1,000 여 편이 넘는 글의 습작 기간을 거쳤다. 그 끝에 수필가로 등단한 전력이 있다. 사실 본격적으로 수필 공부를 한 것은 불과 손가락으로 꼽을 시간이었다.   필자의 첫 평론집인 『예술의 옷을 벗기다』도 독학 끝에 쓴 평설을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한 것이다. 지금 지난 일들을 새삼 거론 하는 것은 문학적 성취를 자랑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소설에 눈을 돌린 이유가 평소 무심코 읽어왔던 작품에 대한 정확한 개안(開眼)을 얻기 위해서라는 말을 강조하기 위함에서다. 그동안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쓴 산문체 문학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그러나 비로소 한 권의 책을 통하여 지난날 편협 된 시각을 바로잡는 계기를 얻었다. 이는 소설가이자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인 김호운 작가의 저서,『소설 학림(學林)』에서 밝힌 그의 언술에 의해서다. “ 소설은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글로 옮겨 쓴 게 아니라 지어낸 이야기를 마치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법 하게 창작 한 것이다.” 라는 언명이 그것이다.   이에 힘입어 소설 창작에 새로운 깊은 관심을 지닌 채 이 책을 교본삼아 작법 공부에 심취 하는 중이다. 이 때 그동안 소설을 마치 수필 쓰듯 짓는 것이라고 허투루 여겨온 것은 아니었는지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도 가져본다. 소설을 필사하노라니 한 편의 소설 내용 속에도 수필과 같이 인간 존재 해명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면 나만의 편견일까?    무엇보다 김호운 소설가는 그의 저서 『소설 학림』에서 ‘소설의 최종 완성자는 독자’라는 내용이 가슴에 와 닿는다. 즉 작가가 쓴 소설은 독자에게 작가가 창작한 의도대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작가가 구성하고 창작한 소설은 독자가 읽음으로써 새롭게 완성된다는 김호운 작가의 언술에 고개가 끄덕여지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내용을 읽은 후 세상사를 편견으로 바라보았던 옹색했던 마음의 눈이 한껏 확장 되는 기분이었다. 또 있다. 나이 들어서도 무엇인가 한 가지 일에 전력을 다하여 몰입 하고 집중할 수 있는 의지가 아직도 자신에게 남아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대견스러웠다.   생뚱맞은 언급이 될지 모르겠다. 필자에겐 올해 9순이신 친정 노모가 계시다. 폐 섬유 화, 폐암에 치매까지 더하여 매우 위중한 병을 앓는 어머니다. 노년의 삶은 어느 누구든 장담할 수 없기에 여러 중증 질병에 고통 받는 어머니를 지켜보노라니 실로 마음이 아프다. 자식이 아무리 효자라 해도 어머니의 병을 나눠 가질 순 없기에 더욱 슬플 따름이다. 곁에서 어머니를 돌봐드리며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치매 증세를 보일 때다. 흔히 하는 말 중엔 늘그막에 걸리지 말아야 할 병이 세 가지가 있다. 뇌졸중 즉 ‘풍’이 그 하나이고, 암이 두 번째고 치매가 셋째다. 그중 가장 경계해야 할 게 치매가 아닐까 싶다. 머릿속 지우개라고도 흔히 말하는 치매는 본인은 전혀 세상사를 인식 못한다. 어찌 보면 고통스러운 통증을 느끼는 암 등에 비하여 가장 행복한(?) 병이라면 지나칠까?   언젠가 신문 기사에서 읽은 내용이 문득 떠오른다. 삼성 서울 병원 건강 의학 센터 박승철 교수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해온‘유언장 쓰기’권유 내용이 인상 깊다. 그 유언장 요지는 “내가 나의 의지로 내 생명의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태에서는 3개월 정도 치료하다가 자연사 하도록 내버려 둘 것을 의사, 가족에게 유언 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친정 노모는 날이 갈수록 병 증세가 심각하다. 심한 기침을 해댈 때마다 곁에서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 이럴 때면 어머닌 본능적인 삶의 의지 표명으로 병원 치료를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의사도 고령인 어머니여서 더 이상 치료할 수 없다며 손을 놓아버린 상태다. 어머닌 당신 몸 사리지 않고 자식이라면 불 속이라도 뛰어들 기세로 헌신과 희생으로 우리를 키웠다. 어머니를 위하여 나는 그 무엇도 해 드릴 수 없음에 뜨거운 눈물만 쏟아질 뿐이다. 이런 어머니를 지켜보며,‘치매는 걸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에서 소설 필사(筆寫)를 틈틈이 하는 중이다. 치매의 발병 원인은 다양하지만 평소 독서를 일상화 하고 글쓰기를 꾸준히 하면 적으나마 치매를 예방 할 수 있다고 해서다. 미리 인생 마감의 출구전략 일환으로써, 유언장을 작성하는 계획역시 세워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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