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탑동 공방에서 ‘누비공방’을 운영하며 명맥이 거의 끊긴 전통 누비를 되살리고 세계에 알린 김해자 국가무형유산 누비장 보유자(71)가 별세했다.문화재청은 일평생 누비옷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누비 제작의 문화재적 가치를 높여온 김해자 보유자가 지난 13일 새벽 5시께 병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대충 만들지 말라. 기운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옷 속에 스며든다”라며 평소 입버릇처럼 강조한 선생의 철학적 사유는 모든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누비 문화 계승을 위해 몸부림쳤다. 너무나 소중하고 훌륭한 작업이었기에 50년 세월을 바칠 수 있었다”는 선생의 말이 고인이 된 지금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1953년 출생인 김해자 보유자는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바느질의 기초를 배우고 중학교 졸업 후 197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옷 만드는 법을 배웠다. 왕실 침방나인이었던 성옥염 여사와 선복 스님에게 바느질과 누비를 배웠다.누비는 옷감의 보강과 보온을 위해 옷감의 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 털, 닥종이 등을 넣거나 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안팎을 줄지어 규칙적으로 홈질해 맞붙이는 바느질 방법이다. 우리나라의 누비는 면화 재배 이후 적극적으로 활성화됐으며 조선시대의 다양한 실물자료들이 전해지고 있다.승려들이 일상복으로 입는 납의(衲衣)는 해진 옷을 수십 년 동안 기워 입은 것에서 유래했고 점차 누비 기법으로 발전해 방한과 내구성, 실용성 등이 뛰어나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사용됐다.선생은 1980년대 초부터 15년간 경남 창녕에 살면서 누비에 전념하며 다수의 제자를 양성했다. 박물관의 유물과 구전으로 전해진 전통 기법을 아는 이들을 찾아가 배우는 등 명맥이 거의 끊긴 전통 누비를 되살려낸 것이다.1996년 누비장 보유자로 인정받아 국내뿐 아니라 일본 NHK 초대전, 파리 프레타포르테 100회 기념 한복전시회, 일본 동경퀼트페스티벌 초대전 등 해외 전시회에 활발하게 참여하며 누비를 세계에 알렸다. 지난해는 ‘누비 답호조끼’로 프랑스 인테리어 박람회 ‘2023 메종앤오브제’에 참가하기도 했다. 국가무형유산 전승자로 우수한 전승공예품을 선보인 김 누비장은 전통 누비를 되살린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992년 제17회 전승 공예대전에 첫 작품을 출품해 국무총리상을 수상, 1996년 최연소 국가무형문화재 제107호 누비장으로 인정받았다.누비옷의 대중화에 앞장선 선생은 일평생 누비 제작의 문화재적 가치를 선양하는데 이바지하고 전통 누비 기법의 보존과 전승활동에 일생 헌신했다. 또 김 누비장의 제작 기술은 우리 정신문화 함양과 한국 복식문화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귀중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유족으로는 자녀 배진여 씨가 있다. 빈소는 동국대 경주병원 장례식장 특2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16일 오전 9시, 장지는 경주하늘마루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