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없으면 한시도 못사는 식물로써 해바라기를 꼽기도 한다. 해바라기는 해가 지면 고개를 힘없이 꺾는다. 그런 해바라기 생태 특징이 때론 인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아부로 흔히 빗대어 표현된다.   인간의 절대성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게 급선무라면 지나칠까. 권력 앞에 사람이 모이고, 물질에 인간의 발길이 옮겨진다. 그러다가도 상대가 별 볼일 없으면 ‘언제 봤느냐’ 식으로 등 돌리는 게 인간이다.   이런 점으로 보아 때론 인간도 해바라기의 생태를 닮아야 하지 않을까. 자신에게 절대자라고 믿었으면 죽으나 사나 그 의리를 지켜 목숨 바쳐 지옥 불길 속이라도 뒤따라야 하잖은가. 눈앞의 이익 때문에 그렇지 못한 게 인간의 속성이다. 하여 중국의 대유가(大儒家) 순자(荀子)는 “사람은 이익을 좋아하고 질투 하며 미워하기 때문에 본성은 악하다.”라고 했나보다.   인연은 비록 산모롱이를 돌다가 옷깃만 스쳐도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그러한 인연을 자신의 물욕을 채우는 일에 연관 짓는다면 과연 그 인연이 얼마나 지속될까. 사람은 따뜻한 가슴으로 만나야 한다. 이해관계에 얽혀 만난 사람은 그 현상이 소멸되면 인간관계도 함께 끊긴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필자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지인들을 만나 못 마시는 술잔이라도 기울이고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를 허심탄회 하게 나누는 것을 즐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한번 맺어진 인연을 매우 중히 여기기도 한다. 그것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가 아닌 오로지 사람 만나는 일이 즐거워서다.   일본의 작가 아나 야스오가 지었으며 이경민씨가 옮긴 『성공하려면 습관을 정복하라』에도 ‘작은 인연도 소중히 하는 습관’이란내용이 있다. 이 글엔 소인(小人)은 연분을 만나도 연분인지 모른단다. 하긴 이 말은 맞는 성 싶다. 인연을 귀히 여겨 내 딴엔 의와 정을 변함없이 지키려 했으나 이런 진실 앞에 눈 감은 여인을 기억한다. 이로 보아 범인(凡人)은 연분인지 알지만 연분을 살리지 못한다는 말도 일리가 있는 말 같다. 반면 대인(大人)은 옷깃을 스치는 작은 인연도 살린다고 했잖은가. 하긴 현대엔 잘못 얽힌 인맥은 독毒이란 말도 회자 된다. 마당발이 성공하는 시대가 아닌 자칫 잘못 엮인 인연이 오히려 귀신보다 더 무서울 때가 있다고 하니 격세지감마저 느낀다.   그럼에도 자칫 소홀히 하기 쉬운 사소한 인연의 중요성을 이 책은 되짚어 주고 있는 것이다. 돈은 자산가치가 크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것은 사람이 지닌 인격이며 그 인격은 돈 이상의 가치를 낳는다는 말도 인상 깊다. 인간적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돈도 아니요. 명예도 아닌 바로 인격인 것이다. 돈이나 명예를 보고 맺은 인연은 그것이 사라지면 인연도 단절된다.    하지만 인격으로 맺어진 인연은 그 지속성이 영구적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그 사람이라면 틀림없다’라고 생각한다면 이미 자신이 지닌 인격으로 사람 됨됨이를 인정 받았다하여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독자들에게 귀한 인연은 돈이나 명예, 권력에 의해 맺어지는 것이 아닌 바로 인간이 지닌 인격에 매료돼 맺어져야 함을 강조 하고 있다. 필자가 아는 어느 지인은 남 보기엔 주변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 같다. 허나 막상 어려운 상황에 부딪쳤을 땐 어느 누구하나 팔 걷고 자기 일처럼 돕는 사람이 없다. 그는 사람들을 자기가 운영하는 사업에 이용하기 바빴다. 심지어 자기의 필요에 의해서만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아무리 온갖 색깔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입에 발린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하지만 사람들이 그의 진실과 가식을 구분 못할 리 없다. 사람들한테 신뢰를 얻지 못하다보니 자연 겉도는 인간관계만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관계는 이해득실을 눈저울질 하여 맺어지는 경우도 있으나 진실한 가슴으로 맺어진 인연이 가장 아름답다. 그런 인연은 나를 비우고 남을 가슴에 들여놓을 때 가능할 것이다.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아집을 버리고 욕심을 줄이는 일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게는 자신의 껍질과 비슷한 구멍을 판다’라고 했다. 인간의 경우라고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판 구멍의 크기가 바로 사람의 그릇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절차탁마에 의한 자기 수양의 결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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