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를 타고 고속도로를 지나다 보니 도로 양편 경사진 절개지를 따라 피기 시작하는 보라색 등꽃들이 눈에 듭니다. 도로공사 할 때 깎아낸 경사지의 토사가 무너지는 것을 막으려고 등나무들을 심었나 봅니다. 차창 밖으로 보라색 커튼이 쳐진 벽을 보면서 가는 길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낭만적인 기분도 부릅니다. 등꽃의 보라색이 이제 곧 피어날 오동나무 꽃의 보라색과 더불어 신비로운 아우라를 풍기는 색깔이어서 나는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인지 할 일이 있어서 가고 있는 이 길이 편안한 여행길로 여겨집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등나무는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 경우 대부분 무성하게 번진 등나무 잎이 지붕이 되어 그늘을 제공하고 그늘 아래는 나무 벤치가 두어 개 놓여 쉼터를 제공합니다.    등나무의 줄기들은 지지대를 휘감으며 몇 개의 줄기가 서로 단단하게 꼬아가며 자라는 동안 지지대의 모양대로 자라 올라가 쉼터의 지붕으로 무성한 잎을 펼쳐 여름날에 뜨거운 햇살을 잠시 피할 수 있도록 합니다. 곧게 자라지 않고 지지할 만한 주변의 것을 덩굴처럼 휘감고 올라가는 속성이 주변의 아무 것이든 휘감아 덮는 칡덩굴의 속성과 닮았습니다. 그래서 갈등(葛藤)이라는 말에 등나무가 포함된 모양입니다.   갈등이란 칡(葛)과 등나무(藤)가 서로 얽히고설켜서 쉽게 떼어내기 어려운 상태라는 의미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집단, 집단과 집단 간의 의견 충돌과 대립으로 마찰하여 그 긴장이 풀기 어려운 상태를 말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여러 형태의 갈등을 겪습니다. 가족 안에서나 직장 내에서 나와 다른 이의 의견 대립으로 긴장 상황을 겪을 때도 있고, 자기가 속한 집단과 자신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도 하며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다른 집단이 대립하고 긴장하는 갈등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망설이는 것처럼 자기 자신 안에서조차 두 가지 대립된 욕구나 자아가 갈등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갈등은 사람이 살아가는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삶이란 수없이 갈등하고 그 갈등을 해소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입니다. 자신에게 던져진 갈등 상황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성장, 집단의 발전이 따라옵니다.   갈등은 개인에게는 스트레스의 원인을 제공하여 심리적, 생리적 활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조직 내에서의 갈등은 조직의 안정성, 조화성, 통일성을 깨뜨릴 수도 있고 갈등이 지속되면 조직의 집단응집성을 이완시키는 역기능이 있습니다. 더구나 사회 체제 내 조직 간에 갈등이 생길 경우 각 집단 및 조직은 전체의 목표나 이익 보다는 자기 집단의 문제 혹은 하위 목표나 이익 추구가 우선되기도 하고 나아가 조직이나 집단의 기능이 마비되는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갈등의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갈등이 일어나고 해결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창의적, 쇄신적 문제 해결 능력이 커질 수 있습니다. 아무런 소통 없이 소수에 의해서 대안이 제시되고 결정지어져 일방적으로 통보되는 것보다 갈등이 생긴 두 대상이 서로의 생각을 평가하며 비판, 동의, 양보하는 과정을 거치며 개선된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입니다. 또, 집단 사이도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을 학습함으로써 개방적 상호관계가 형성되면 상호적응력도 더 나아질 것입니다. 그로 인해 집단 내의 응집성이 강화되며 변화를 위한 민감성이 증가하여 스스로 발전을 추구할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습니다.   근간 우리 사회에 야기된 갈등이 꽤 풀기 어려운 난제가 되어 시간이 가도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의과대학생 수 증원안과 이에 대립하는 의료집단과의 마찰로 생긴 갈등이 좀처럼 풀어지지 않습니다. 이러는 동안 환자들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고 응급상황의 환자가 치료해 줄 병원을 찾아 전전하다가 생명을 잃는 심각한 경우도 발생했습니다. 정부든 의료집단이든 양측이 모두 팽팽하게 맞서며 서로 상대방이 양보하기를 요구하는 양상이 외나무다리 위에서 만난 두 마리의 염소 우화가 생각나게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갈등에도 순기능이 있습니다. 국민들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한 갈등을 두 집단이 무한정 지속시키지는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 쪽의 주장만을 밀고 나갈 정도로 우리 의식 수준의 격이 떨어지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므로 이 갈등이 해소되면 우리나라의 의료 현실이 지금보다도 더 나아지고 성숙해질 것을 국민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두 갈래 굵은 줄기가 다만 얽히고설킨 모습만 보이지만 때가 되면 예쁜 보라색 꽃을 가득 피운 등나무 쉼터가 되겠지요. 곧 그 향기로운 그늘에서 몸과 마음이 쉬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우리는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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