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명서(책)인 사서(四書)는 유교의 경전인 논어·맹자·중용·대학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다. 그 중 ‘논어’는 공자의 언행(말씀과 행동)이며 제자·제후들과의 문답서로써 많은 독자를 두고 있다. ‘과유불급’이란 용어도 논어의 ‘선진편’에 수록된 말씀이다. 여러 문인들을 비롯한 여러 인물에 대한 평(評)이 많은데 거기에서 나온 이야기다. 어느 날 제자인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물었다. 자공은 위나라 출신으로 공자의 10명인 ‘공문십철’에 속하는 명제자로 정치에도 뛰어나 나중에 노나라·위나라의 재상을 역임한 재주꾼이다. 집안이 부자라서 경제적으로 공자를 크게 도운 인물로 알려졌다.자공의 질문은, 두 사람의 재능을 묻는 것이다. “스승님, 자장과 자하 중에 어느 쪽이 지혜롭고 현명합니까?” 문의했다. 공자는 두 제자를 두고 한참 비교한 다음 이렇게 응답했다고 했다. 자장은 아무래도 매사에 재주가 너무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소심하고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제자 자공이 한 가지 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자장이 더 훌륭하다는 말씀이네요. 공자가 다시 답했다. 그렇지 않다. 지나침은 모자람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지.이 대목에서, 공자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중용의 도(道)를 말했던 것이다. 직립(直立)의 자세를 생활신조로 삼는 중정(中正)인 것이다. 그 말의 속뜻은 너무 지나쳐도 좋지 않고, 너무 모자라도 좋은 것이 아니니 중간이 가장 적당하다는 의미를 지닌 용어가 ‘과유불급’이라한 것이다. 과유불급은 ‘논어’에서 강조한 것으로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는 곧 중용을 지키라는 말이다. 철학자 키케로-사람이 오래 살 것을 소망한다면 중용의 길을 밟으라 한다. 덕(德)이란 우리들에게 중용을 성립시키는 행위를 선택하는 행위라 한다.고대 희랍의 대철학자는 그의 ‘윤리학’에서, 지나침과 모자람은 악(惡)의 특색이고, 중용은 덕의 특색이라 했다. 너무 많든 너무 적든 도(度)를 넘으면 흥(좋은 것)이 깨진다. 중용을 강조하는 명언들이 많다. 중용의 도가 최선이며, 모두가 과격한 것은 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므로 모두가 삼가하고 조심하는 것이 최상이다.‘중용’이란 책에 중화(中和)라는 글이 왔다는 말을 듣고, 필자가 그 뜻을 찾아보았다. 우리말 사전에, 중화란 성격이나 감정이 치우침이 없이 올바른 것과 그러한 상태를 말한다. 중용의 한 글귀에, 희로애락의 아직 발하지 않음을 중(中)이라 하고, 발하여 모두 법도에 투철한 것을 화(和)라고 한다. 중용의 참뜻을 모르는 우리 서민들은 지금까지도 중용은 좌도 우도 아니고 내 편도 너의 편도 아닌 어중간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인 줄만 알고 있다. 중용이란 영어의 굿센스(good sense-타고난 양식이나 분별)인데 의미가 유사한 단어이다. 철학교수 김태길의 ‘연년세세’에, 중용이 미덕이라는 것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뜨거운 것도 아니며 차가운 것도 못 되는 너의 미지근함-사랑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아닌 너의 무관심- 그것은 중용이 아니라 한갓 중간이다.중간은 두 사물이나 현상의 사이이다. 중용의 힘은 지고지선(至高至善)이라, 지고는 더없이 높다는 뜻으로 더없이 훌륭함이고, 지선은 더없이 착함이다. 이를 행하는 사람은 예부터 매우 적다고 한다. 또한 논어에도, 임금을 섬기되 과잉 충성은 미움을 받으며, 벗을 사귀되 정이 지나치면 귀찮게 여긴다고 한다. 미국의 한 정치가의 어록에, 사람들은 중간노선이라는 것을 마치 인정할 수 없는 것인양 말을 한다. 사실에 있어서 도덕을 제외한 모든 인간의 문제는 회색에 속한다고 한다. 만사 모두가 흑이나 백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타협이 있어야 함을 예고한다.우리말에 분수란 용어가 있다. 자기의 처지에 마땅한 한도(분한)로 분수에 맞게 생활하라. 분수가 없는 사람에 자주 쓰이는 말로 사물을 분별하는 슬기(지혜)이다. 지나치지 않고 알맞게 행동해서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분에 넘치는 것은 탐욕이고, 군자는 생각하는 것이 자기의 분수를 넘지 말라는 말씀도 있다. 가장 편안하게 가려면 한 가운데 길을 택하라. 어떠한 일에도 중간쯤에 행복이 있고, 순경에서 조심하고 역경에서 참는다. 몸을 녹이는 데는 큰불보다 훈훈한 모닥불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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