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세종대왕 시기에 활동한 박연(朴堧, 1378∼1458)은 충청북도 영동군 출신으로 왕산악, 우륵을 잇는 삼대 악성(樂聖)으로 전해 온다. 그는 음악만이 아니라 정치, 교육,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이다.   박연은 친상을 당하여 부모의 산소를 영동 심천 마곡리 산에 모시고 산소 곁에 廬幕을 지어서 시묘살이를 한 효자였다. 그는 대금을 잘 불었다고 한다. 고요한 산소 옆에서 대금을 불면 그 소리를 들은 날짐승과 길짐승들이 모여들어서 신명 나게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 많은 짐승 중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삼 년 동안 하룻밤도 빠지지 않고 여막의 옆에 앉아서 같이 밤을 새우며 다른 짐승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박연을 지켜 주었다. 그런데 밤마다 나타났던 호랑이가 어느 날 보이지 않았다,   박연은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호랑이를 기다리다가 깜박 잠이 들고 말았다. 이상하게도 꿈속에 그 호랑이가 나타나서 “선생님, 저는 지금 당제에서 덫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빨리 오셔서 살려주십시오.”하고 호소하였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너무나 선명한 꿈이었다. 그래서 박연은 깨자마자 20리 떨어진 당제까지 허겁지겁 달렸다. 어두운 밤길을 달려가느라 숨이 찼으나 호랑이가 금방 죽을 것 같은 예감 때문에 쉬지 않고 달렸던 것이다.   날이 샐 무렵 당제에 도착하니 마을 사람들이 운집하여 호랑이를 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호랑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박연은 자기를 지켜 주었던 호랑이기 때문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호랑이가 밤마다 산소 곁에 와서 자기를 지켜 주었다는 사실을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였더니 사연을 알아들은 사람들은 모두가 이해하고 호랑이를 박연에게 주었다. 박연은 호랑이를 아버지 산소 곁에 정중하게 묻어 주었다. 아버지 산소에 묘사를 지낼 때는 호랑이 무덤에 술을 부어주며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한다. 이 호랑이 무덤을 호총(虎塚)이라고 하는데, 박연의 후손들은 오늘날까지 조상의 산소에 묘사를 지낼 때마다 호총에 대해서도 제사를 빼놓지 않고 지낸다고 알려져 오고 있다. 호랑이가 박연을 지켜 준 것은 아마도 그의 지극했던 효행이 호랑이를 감동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박연의 효행이 미물에게까지 덕을 베풀었다는 것을 느껴보게 하는 ‘궁노루가 있으면 향내가 난다.’는 속담을 전해주고 있어서 의미 깊은 사적이라 생각된다.   선인(先人)들은 제사를 신에 대한 정성이라 하였고,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정성을 다해 섬기고, 돌아갔을 때는 슬픔을 다해야 하며, 제사를 지낼 때는 엄숙함을 다해야 한다(居則致其敬 喪則致其哀 祭則致其嚴)고 가르쳤다. 살아 계실 때 섬기는 것과 같이 돌아가셨을 때도 섬기며(死事如事生) 효도를 다하는 것이 제사(致孝享也)라 하였는데, 미물의 은혜를 잊지 않고 제사를 지냈다는 박연의 고사는 오늘날 부모의 은공을 모르는 세태에서 볼 때 신선한 충격을 주는 듯 궁노루가 있으면 향내가 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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