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信義)에 반하는 행동을 일컬어 우리는 배신(背信)이라 말하는데, 신의란 사람과 사람 사이, 일종의 심리적 불문(不文) 계약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계약이란 일방적일 수 없고, 반드시 대상이 있는 쌍방 간의 특정 약속을 의미하는 것인바, 어느 일방이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다른 일방 역시 그 약속을 지켜야 할 의무는 자연 소멸되어 진다.공인(公人)이 대중을 향해 하는 공약(公約) 역시 신의의 문제로, 스스로 신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배신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그 배신을 간악한 배신과 의로운 배신으로 구분하고 싶은 것이다.우리는 흔히 특정 정치인이 노선을 달리하면 곧 배신자 낙인을 찍기도 하지만, 개인과 개인 간에도 상호간 신의가 지켜지지 않을 때 일방적으로 신의를 지켜야 할 의무가 면제되는 것처럼, 어떤 정치인의 의로운 노선 변경을 굳이 비난할 이유가 있을까?조폭들의 세계에 불문율(不文律)로 회자되는 `의리`나 정치인의 `충성심`을 등치시켜 볼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의리란 사전적 의미대로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하는 것일 뿐, 공범의식과 같은 비도덕적 연대의식까지를 포함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정치인이 진실로 섬겨야 할 주군(主君)은 오직 자신에게 권한을 위임해 준 유권자일망정, 충성과 복종을 기대하거나 강요하는 일개인(一介人) 혹은 특정 집단일 수 없기 때문이다. 가령 한 때 화려한 언변과 기만술로 대중을 사로잡았던 ‘히틀러’에게 매료되어 ‘나치스’당원이 되었던 어떤 사람이 가장 반인륜적인 나치즘의 만행에 혐오를 느껴 등을 돌렸다면, 그는 배신자인가 아니면 의로운 사람인가?하극상(下剋上)과 배신으로 권력을 잡은 사람일수록 또 다른 하극상과 배신을 가장 두려워하기 마련인바 특히 신의를 강조하며, 또 자신을 배신하기 어려운 약점의 소유자를 그 아래에 두고자 한다. 때문에 인사(人事)의 악순환을 피하기 어려운 법, 그러니까 썩은 목재로 기둥과 서까래를 삼은 집이 오래 버틸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한데, 무너지는 전각(殿閣)아래에서 끝까지 연회를 즐기려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겠지만, 들고 있던 잔을 던지고 재빨리 몸을 피하는 사람도 있을 법 한데, 뉘라서 그를 배신자라 할 것인가 그 말이다.어떤 범죄 집단 내에서 공범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공익제보자가 될 것인지, 그 역시 본인의 선택이겠지만, 우리는 공익제보자를 배신자라 하지는 않으며, 그런 사람이야말로 바로 의로운 배신을 망설이지 않는 진실로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닐까?한 때 ‘나치스’의 고급 당원이었지만, 수많은 유태인들을 홀로코스트에서 구해낸 독일인 ‘쉰들러’는 나치스당의 입장에서는 배신자인지 몰라도, 후일에 그의 선행을 기리는 ‘쉰들러 리스트’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쾌락과 향응이 넘치는 궁궐의 높은 담장을 오직 필마(匹馬)로 뛰어넘어 고행(苦行)의 길을 간 왕자 `고오타마 싯다르타`는 부모를 등지고 처자식을 버린 배신자인지는 모르지만, 마침내 부처님이 되시어 인류의 등불이 되지 않았는가?깜깜 어두운 밤에 손에 잡히는 것을 두고 콩이다 팥이다 논란 하지만, 불을 켜고 보면 그것이 무엇인지 모두가 확철대오(確徹大悟)하게 될 것이니, 부질없는 논쟁들일랑 제발 그만두고 이제 우리 모두 등불을 들어야 옳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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