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3대가 한 가족을 이뤄 살아가는 가정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할아버지의 훈육과 할머니의 깊은 사랑으로 자라는 아이의 인성이 반듯하고 남다르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일반적인 상식으로 여겨져 왔다. 기성세대의 상당 부분은 3대에 걸친 대가족의 구성원으로 성장했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든든하고 행복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지금은 모든 시스템이 분절되고 세분화되면서 우리의 가정마저 독립구조로 변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 줄곧 지켜오던 대가족 시스템이 불과 몇십 년 만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독립된 가정에서는 또 아이들 대부분의 교육을 기관에 의탁하고 부모들은 생업에 매달린다. 치열하고 단출해서 좋다고 할지 모르지만 어디 한 군데가 빠진 듯한 허전함을 느낀다.고대 이집트 동굴벽화에 쓰여진 문자를 해독하고 보니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였다는 고고학계의 이야기가 있다. 소위 밀레니엄 세대로 불리는 MZ 세대와 그 이후에 태어난 아동 청소년들의 삶의 방식과 생각들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는 ‘꼰대’들의 시각은 만약 고대 이집트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여지없이 탄핵당할 수 있다. 그 짧은 문장으로 당시에도 세대간의 갈등은 있었고 의식의 격차가 존재했다고 유추할 수 있으니 반드시 현세대의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의 삶의 방식과 다르다고 투덜거리면 안 된다는 말이다.단출한 가정을 이뤄 살아간다면 과연 그 가정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철학이 우려할 수준으로 정착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개중에는 누구보다 헌신적이고 모범적이며 리더십이 강한 아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가정의 형태가 변했고 양육의 방식이 변했다 하더라도 부모의 역할과 일상의 모습에 따라 아이들은 배우고 자란다.‘가정의 달’이라 불리는 5월의 문이 열렸다. 서민들은 덜컥 주머니 걱정부터 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등 줄줄이 금전을 지출해야 하는 기념일들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물가상승 곡선이 가팔라서 맘 놓고 외식에 나서자고 결심하기도 버거운 상태다. 과연 이 상황이 온전한 것일까.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느끼고 느슨해진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생각보다 지출에 대한 걱정부터 하는 것이 옳다는 말인가.어느 방송에서 어버이날에 부모님에게 전하는 꽃다발과 함께 오만원권 장식을 덧붙인다면 부모님이 매우 좋아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기가 막힌 노릇이다. 또 어버이날에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은 ‘용돈’이라고 답한 부모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뉴스로 접한 적이 있다. 어린이날에도 고가의 선물을 줘야 한다는 부담을 안은 젊은 부모들도 허다하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다.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물질 일변도로 변한 것일까. 그것도 가족들간의 행사에 돈 걱정을 앞세워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명절이 아니고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객지의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이 오만원권 다발을 장식한 꽃바구니 들고 오는 자식을 상상하지는 않을 것이다. 금쪽같은 자식이 아무리 귀하다 한들 무리해 가면서 아이가 원하는 고가의 디지털 기계를 안겨야 한다는 부담을 떨치지 못한다면 이 무슨 해괴한 형국인가.따뜻한 인사, 진심이 담긴 위로, 정성을 다한 사랑의 선물로 가정의 달을 맞이해야 한다. 현대의 사람 살이가 아무리 경제에 휘둘린다 하더라도 가족은 경제적 개념이 아니다. 울타리가 되고 버팀목이 되며 포근하게 감싸 안아줄 수 있는 관계인 가족의 의미를 더이상 퇴색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상황이어도 내 편이 돼 주고 곧고 바른길을 갈 수 있도록 길라잡이가 돼 주는 가족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 가정의 달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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