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단절에 시달리는 게 노년이다. 친정어머니만 하여도 집안에 혼자 계시는 것을 당신 지병이 안겨주는 고통만큼 싫어한다. 어머닌 폐 섬유 증, 폐암, 치매 등을 앓는 시한부가 됐다. 이런 어머니를 봉양 하노라니 어느 경우엔 삶이 여유롭지 않음을 느낀다. 그럼에도 어머니를 직접 봉양 하는 것은 자식으로서 도리이기도 하다는 생각만큼은 지울 수 없다. 이는 지난날 우리를 낳고 키우느라 희생과 헌신만 한 어머니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아야한다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런 어머니를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으로 모시면 본인은 물론, 필자도 편할 텐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 말한다. 요즘은 노인 요양 기관도 시설도 잘 갖췄고 자식처럼 돌봐 준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그럼에도 어머니를 선뜻 요양 시설로 못 보내는 것은 차마 어머니를 타인 손에 맡긴다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다. 무엇보다 어머니께서 평소 어떤 경우라도 요양원은 보내지 말아달라는 말을 누차 해왔고, 어머니랑 “그러마” 라고 굳게 약속 해서다.   어머니는 젊은 날 정신력이 매우 강하고 사려가 깊으며 자애로운 분이였다. 반면 자식 교육만큼은 엄격했다. 학창 시절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 어머닌 우리에게 시간 맞춰 집에 들어올 것을 강조했다. 그런 어머니 말씀에 순종하곤 했다. 우린 단 한 번도 어머니가 제시한 약속 시간을 어긴 적이 없다. 또한 이불을 개킬 때도 반듯하게 네 귀퉁이가 정확히 맞도록 개키도록 일렀다. 잠자리에 들기 전 벗어놓은 옷은 항상 머리맡에 가지런히 개켜서 두고 자라고 타이르기도 했다.   공부도 학교서 배운 것을 복습 및 교과서 단원을 예습 하라는 말씀을 잊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당하여 행하지 말고 미리 준비해 두라고도 누누이 말하곤 했다. 오늘날 유비무환의 필자 정신도 어린 날 어머니로부터 받은 가정교육 영향 때문이다. 또 있다. 어머닌 남에게 은혜를 입으면 무엇으로든 갚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였다. 남이 베푼, 친절, 배려를 감사히 받아드리고 그것을 마음으로라도 갚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라는 말씀은 오늘날 사람답게 사는 덕목이 돼주고도 남음 있다.   이런 어머니를 어찌 내 한 몸 편하자고 ‘나 몰라라’ 할 수 있으리오. 자식을 보면 그 부모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만큼 부모는 자식의 거울인 셈이다. 어머니는 필자에게 육신을 주기도 했지만 영혼을 불어 넣어준 분이기도 하다. 이런 어머니 가르침 덕분에 적어도 타인을 까닭 없이 해코지 하거나 말 한마디라도 상처 주는 것을 경계할 줄 알잖은가. 염치와 겸양역시 무엇인지도 깨닫는 사람으로 성장케 했잖은가. 즉 인간으로서 진선미를 추구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도 한 어머니다. 이런 어머니를 공경하는데 소홀함이 없어야겠다는 마음을 안겨주는 한 편의 글이 있어 매우 인상적이다. 이규태의 글 「신 고려장新 高麗葬」이 그것이다. 이 글에서 이규태는 초楚 나라 사람 원곡이 자기 아들로 하여금 그의 노부老父를 수레에 태워 버리고 오도록 시킨 이야기를 서두로 꺼냈다. 이는 중국 문헌인 《효자전》에 의한 이야기였다. 원곡은 자기 아비를 버리고 빈 수레를 다시 갖고 온 아들을 나무라자 아들은 “ 아버지가 늙으면 또다시 수레 만들기가 번거롭다고 생각하여 그 때 다시 쓰려고 가져왔습니다.” 라는 대꾸를 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도 늙고 병들면 부모를 유기해 죽게 하는 기로棄老 · 살로속殺老俗이 중국에도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고 이규태는 언술했다.   중국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닌 듯 싶다. 이 글에서 노부모가 죽기 직전에 외사外舍에 가둬 죽게 하며 만약 집에서 죽으면 그 집을 부수고 이사를 하는 고려 시대 폐풍이 조선 왕조 초까지 있었던지 세종 11년에 이 폐풍을 교정하라는 어명까지 내렸다고 했다. 다산의 문집에도 이런 ‘고려장법高麗葬法’ 이라는 대목이 있다. 병들거나 망령든 노부모를 공간을 둔 분묘 속에 가두는데 함께 넣어둔 약간의 양식이 떨어지면 죽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고 한다. 이로보아 우리나라에 고려장 터로 추정되는 분묘가 적잖이 발굴 되는 게 이를 여실이 증명 하는 듯하다.   어쩌면 현대 고려장터는 그야말로 최신식 시설 및 의료시설까지 갖춘 요양원이나 요양 병원이 아닐까 싶다면 지나칠까. 으레 노부모가 병들면 그 다음 수순이 요양원, 요양 병원으로 직행이어서 해 본 말이다. 하긴 삶에 쫓겨 사는 현대인들이 어찌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부모 병구완을 할 수 있으랴. 그러고 보니 언젠가 뉴스 내용이 문득 생각난다. 추운 겨울 날씨에 부모를 발가벗겨 밖으로 내쫓은 딸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세 딸을 둔 필자로선 이런 뉴스를 대할 때마다 왠지 서글프고 삶이 부질없음마저 느낀다. 부모가 누구인가. 이 세상 빛을 보게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분 아닌가. 아무리 삶이 버겁다고 하여도 어찌 부모를 외면할 수 있으랴.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사람이 성공도 한다고 한다. 이는 하늘이 정해 준 진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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