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익어 가고 있다. 들판은 누렇게 채색됐고 오곡과 백과는 수밀도를 더하고 있다. 릴케의 싯귀처럼 남국의 햇살이 며칠만 더해 준다면 올해도 농사는 풍년이다.
하늘이 드높고 날씨가 순조로와 올해는 단풍도 예년보다 아름다울 것이라고 한다. 그 풍요로운 가을의 초입에 민족의 명절, 추석이 자리잡고 있다.
올해는 예년보다 추석연휴가 길어 귀성인파도 절정을 이룰 것이란 전망이다. 덩달아 해외여행도 러시를 이뤄 공항이 붐비고 있다. 한가위가 가져다 준 여유이다.
우리의 추석은 일년 중 가장 넉넉하다. 햇곡식이 익어가 우선 심리적으로 포만감을 갖는다.먹을 것 걱정을 덜고 날씨도 맑고 하늘도 청명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신라시대부터 추석을 전후한 한달동안 왕녀가 주관하는 두레 삼삼기대회가 열려 축제의 열기를 더했고 한가위날은 햇곡식으로 조상의 음덕을 기렸다.
세시풍속으로는 이날을 기해 여름옷에서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머슴들에게도 새옷을 지어 주었다. 추수감사의 의미가 짙어 농악과 춤,노래가 있었고 그네뛰기,줄다리기,씨름에 소.닭싸움이 뒤를 이었다.
씨름에서 이긴 머슴은 상머슴 취급을 받아 세경도 오르는 특혜를 받았다. 며느리도 추석에는 휴가를 받아 맛있는 음식으로 친정부모를 찾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반보기라도했다. 조상들은 그러한 즐거움을 덜가진 이웃과 나누는 온정도 잊지 않았다. 모두가 가을의 풍요가 안겨주는 선물이다.
그러나 축제의 뒤안에는 소외받고 힘든 생활을 영위하는 계층이 있다.모두가 즐길 때 그들은 고된 삶을 비관한다. 우리가 돌보고 함께 가야 할 이웃들이다.
두차례의 명절이 조상을 기리는 절기지만 특히 한가위는 옛부터 이웃을 찾아보고 나누는 절기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한 은혜입은 자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안부를 살피는 일,갖가지 곡식을 종류별로 싸보내는 옛관습과 다를 바 없다.
긴 연휴를 이용해 해외 나들이를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그러나 나들이에 앞서 한번쯤 이웃을 살피고 나누는 인보의 정신도 한가위의 의미를 새기는 미덕일 것이다
우리사회의 새로운 아젠다는 공정한 사회이다. 가진자가 더 갖기위해 세금을 탈루하고 투기를 일삼고 신분상승을 위해 위장전입을 일삼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상류층의 이러한 작태는 위화감마저 조성해 우리가 지향하는 더불어 잘 사는 사회와 거리가 멀다. 덜가진 자들을 배려하고 돌보는 사회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가진자들과 사회지도층의 걸태질에 가까운 작태는 우리의 국격을 떨어트리고 있다.
그래서 나온 아젠다가 '공정한 사회.이다. 올 추석 정부가 내놓은 공정한 사회를 위한 선물은 단연 보육비 지원이다. 서민들의 생활비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보육비로 멍든 보육비 부담을 없애 출산의욕을 북돋우고 교육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자는 것이다.
이는 교육으로인해 가난을 대물림하는 종전의 불공정을 깨는 첫 단초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사회의 당연한 게임 룰이다. 정부의 발표대로라면 국민의 70%가 이 혜택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의 공정사회는 이제 시작이다. 국가의 제도에서 인재등용 취업 등 모든 분야가 제도적으로 정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번 한가위의 큰 의미이다.
한가위와 함께 가을도 깊어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이 풍요한 가을을 즐기는 요란한 행락철을 맞는다. 곱게 물들은 단풍을 보며 즐기는 것은 정신건강에도 좋다.
그러나 애잔한 풀벌레 소라와 생을 마감하는 잎사귀들의 채색을 보면 상념에 젖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 가을 우리도 한번쯤은 스스로를 뒤돌아 보아야 한다. 이웃을 배려하는 여유도 필요하다.
나는 공정한가 반문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한가위가 들어있는 가을 날의 단상이다.
변 린(객원 논설위원.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