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일 임기가 끝나는 김진표 국회의장이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이른바 '팬덤정치'를 겨냥해 작심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김 의장은 21일 국회의원 초선 당선인 연찬회에서 "진영 주장에 반대하면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이라며 역적이라고 여긴다"며 "대의민주주의의 큰 위기"라고 일갈했다. 이어 22일 퇴임 기자간담회에선 최근의 정치팬덤이 과거 '노사모'와 같은 건강한 팬덤과 다르다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배제하고 집중 공격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21대 후반기 국회 의사봉을 잡았던 김 의장은 취임 이래 의장의 정치적 중립과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을 줄곧 강조해왔다. 의장으로서는 당연히 취해야 할 태도다. 실제 국회법이 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고 있는 것은 여야 사이에서 중재와 타협을 끌어내라는 취지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재임 기간 중립을 강조하다가 출신당인 민주당 내 강성 지지층에 의해 '수박'이라는 멸칭을 받아오기도 했다. 당의 활동이나 정체성과 직결된 어젠다를 추진할 때 열성적인 당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당을 넘어 대의제 기구인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의사결정까지 제약하는 상황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최근 민주당 내에서 일부 강성 당원들이 의장 후보경선 결과에 반발해 탈당까지 불사하고 있는 것은 소망스럽지 않다. '극우 유튜버' '태극기 부대' 등으로 지칭되는 보수진영의 팬덤정치도 다르지 않다. 국회의원도 당원으로서 당심(黨心)을 의식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국가 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헌법기관이다. 지금 한국 정치의 위기는 김 의장 말대로 대의 민주주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국회 자체가 진영 대결의 장으로 변질해있는 터라 사회적 이해조정 시스템인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여야 모두 적대적 공존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본령으로 돌아갈 때다. 강성 지지층과 정체성만 좇는 소수의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는 다수의 정치가 존중받아야 한다. 차기 의장 후보가 된 민주당 우원식 의원의 입장 설정과 역할이 주목되지만, 여야 지도부와 의원 개개인이 팬덤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성숙하고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민주주의의 성숙도는 의회의 역할에 달려있다. 연합.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