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계류 중이던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이 기어코 21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법안은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용후 핵연료의 영구 처분시설과 중간 저장시설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사용후 핵연료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에 속한다.
21대 국회는 28일 마지막 본회의에 이 법안을 상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법안은 자동폐기 됐다. 그동안 원자력 관련 기관과 학회, 원전소재 주민들, 업계에서 간절하게 호소하고 수시로 국회에 올라가 설득도 했지만 국회는 기어이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21대 국회에서 여야는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의 사용후 핵연료 저장 용량을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을 내고 대립했었다. 정부와 국민의힘은 원전의 설계수명이 연장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해셔 저장시설의 용량을 정하자는 입장이었고 더불어민주당은 원전의 설계수명이 종료되면 운전을 정지한다는 것을 전제로 저장 용량을 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원자력발전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이 팽팽하게 대립된다는 점을 증명하는 사례다.
한때 이 법안은 국회 상임위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된 상태에서 여야가 적극적으로 논의를 하면서 21대 국회에서 통과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하고 폐기되고 말았다. 여야의 입장차이는 상임위를 통해 충분히 조정될 수 있고 저장시설 부재로 인한 다급함을 생각했을 때 어느 법안보다 우선적으로 처리됐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이를 외면했다.
각 원자력발전소는 현재 발생하는 사용후 핵연료를 임시저장소를 만들어 저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용량도 한계가 있어 2030년 한빛 원전을 시작으로 한울, 고리 등 다수 원전에서 10년 내 핵폐기물 임시 저장소가 포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최근 새롭게 중간 저장시설을 증설했거나 새로 원자력발전소를 가동하기 시작한 월성(2037년), 신월성(2042년), 새울(2066년) 등도 기한이 정해져 있다.
22대 국회가 이 법안을 처리하지 못한 것이 단순히 방폐물 처리시설을 바라보는 여야의 입장차이였다면 21대 국회의 책임방기가 그렇게 원망스럽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채상병 특별법 재표결을 앞두고 모든 상임위 활동을 거부한 것과 민주당이 조만간 발표될 11차 전기본에 신규 원전 계획이 담기지 않아야 고준위특별법안 합의 처리가 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나왔기 때문이니 도대체 국민은 정치인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지 난감한 상황이다.
오직 민생만 챙기겠다던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 중차대한 문제를 외면하고 오로지 자기 정당의 이익과 정치적 입장만 앞세웠으니 국민의 질타를 면할 수 없게 됐다. 이제 그들이 무슨 소리를 해도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다고 해도 더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원자력이 생산한 전력의 혜택을 받지 않고 살아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