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아닌 저곳으로 건너가기휴가 없이 여름 휴가 기간이 끝났다. 여행을 떠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오는 때다.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돌아다니더라도 사람 만나 얘기 나누는 걸 좋아한다. 어설픈 초짜 여행자 모습으로 허둥대며 실수 연발하는 것도 즐긴다. 쓰고 나니 나름 여행을 좋아하는 것도 같다.보통 여행을 멀리 떠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곳이 아닌 저곳이라는 공간 이동이 중요하다는 것. 여행은 지금 일상을 벗어난 새로운 곳에서 스트레스를 잊고 편안히 쉬는 좋은 방법이다. 여행이 ‘훌쩍’ 떠나는 경험이 되는 이유다. 새로운 장소/풍경을 알아가는 즐거움은 덤이다. 여행은 이처럼 물리적인 거리가 있는 시공간으로 떠나는 비일상적인 행위다. 여행이 일상인 사람도 있겠지만 흔하지는 않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늘 보는 풍경과 다른 풍경, 늘 접하는 사람과 다른 사람을 만난다. 동시에 스스로에게 낯선 존재가 된 자신과도 마주치게 된다. 낯선 자기 모습을 보고 놀라며 말을 건네는 것은 매혹적인 일이다.본래 낯설고 처음 보는 세상우리는 누구나 정해진 하루 루틴과 시공간의 규칙에 따라 살아간다. 매일같이 아침에 일어나 직장에 출근하는 사람이 오후에 일어나 술집으로 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휴일이거나 사표를 던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이미 정해진 친숙한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그러다 갑자기 일상을 벗어나고픈 충동을 느낀다면? 충동을 직접 실행까지 한다면? 곧바로 낯선 세상의 민낯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가령 매일 아침 출근하다가 여행이라도 떠나면 출근길과는 다른 길 위에 놓이게 된다. 길 위에서 여행자는 지금껏 꾸지 못한 꿈을 꾸고 알지 못했던 사물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사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들이다. 세상은 본래 낯설고 처음 보는 사물/환경에 둘러싸여 있다. 이전 경험이나 학습을 통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지레짐작할 뿐. 낯선 것들은 알고 싶고 체험하고 싶은 욕구와 함께 불편함과 피하고 싶은 마음도 불러일으킨다.떠나지 않고도 떠날 수 있는?그 결과 우리 뇌는 친숙하지 않은 것을 인지 구조 안에서 탐색한 뒤 무관심의 영역으로 보내버린다. 낯선 것들이 주는 자극을 피해 편안함과 항상성(homeostasis)을 느끼기 위함이다. 인간이 새로운 것에 탐닉하면서도 익숙하고 친숙한 상황에 안주하려는 이유다.다른 방법은 없을까? 있다. 나 자신이 ‘새로운 눈’을 갖는 것.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떠나지 않고도 떠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