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에서 팀 코리아 젊은 선수들의 활약상이 눈부십니다. 경기 중인 선수들의 역동적 모습도 아름답지만 카메라가 포착한 선수들의 경기 밖 모습도 화젯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동영상 공유 플랫폼에 우리나라 탁구의 신유빈 선수가 경기 중 인터벌 동안 얼음주머니를 머리에 얹고 에너지보충용 간식을 먹는 영상이 올라오자 외국인들까지도 그 모습이 귀엽다고 댓글을 많이 달았더군요. 
 
그 영상에 알고리즘으로 따라 온 추천 영상으로 유빈선수가 다섯 살 때 모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 탁구 천재로 출연했던 귀여운 모습도 덤으로 보았습니다. 출연 당시 겨우 다섯 살인 신유빈 선수가 고사리같은 손에 쥔 탁구채로 전 국가대표 현정화씨가 넘겨주는 공을 받아서 랠리를 이어가는 게임 운영력이 도무지 대여섯 살 유아의 실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감탄이 절로 났습니다. 타고난 재능이었습니다.
 
한 달 쯤 전인 것 같은데요,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을 앞둔 우리나라 청년이 클래식 발레의 최고봉이라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오디션을 통과해 내년 2월에 정식으로 입단할 예정이라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유서 깊은 그 발레단에 처음부터 솔로이스트로 입단하는 우리나라 발레리노는 그가 처음인 만큼 실력이 탁월하다 합니다. 
 
청년의 이름은 전민철입니다. 수 년 전 한 소년이 아버지의 반대와 어려운 환경을 넘어서서 발레리노로 성장하는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뮤지컬 버전 공연을 위해 주인공 빌리를 뽑는 오디션 과정을 예능 방송으로 본 적 있습니다. 전국에서 모여든 엄청난 경쟁을 거쳐 최종적으로 압축된 몇 명의 소년 중 키가 큰 한 소년이 눈에 띄었습니다. 중학교 진학을 목전에 둔 소년은 발레를 계속하고 싶지만 그의 아버지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장래 직업으로서 발레리노가 되는 것에는 반대 의견을 표합니다. 
 
그런 아버지에게 소년은 ‘발레를 할 때 내가 행복해하는 모습은 안 보이세요?’라던 말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춘기로 접어든 소년의 큰 키와 변성기가 시작되는 목소리 때문에 민철이라는 이름의 소년은 결국 오디션에서 탈락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한다는 전민철이라는 청년이 아버지의 반대에도 자신이 행복한 때가 꿈꾸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때라고 말하던 민철이라는 바로 그 소년임을 알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런 것은 특별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요. 물론 재능과 적성이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그 필요조건을 채워 줄 ‘노력’이라는 충분조건이 갖추어지지 않고는 만들 수 없는 결말입니다. 세계 최고 발레단에 입단할 수 있기까지 소년이 흘렸을 눈물과 땀은 상상 이상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꼬마 유빈이가 세계무대에서 기량을 펼치기 위해 얼마나 힘든 훈련과 그로 인한 부상을 견뎠을지 국가대표 신유빈은 탁구대 앞에서 몸으로 표현합니다. 
 
‘마부작침(磨斧作針-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이란 말로도,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노력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해 낼 수 없는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소년이 무대에서 백조로 도약해 날아오를 수 있었을까요? 현재 파리올림픽에서 세계 최고의 기량을 보이는 우리나라 선수들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높이뛰기 종목에서 기준 높이의 바를 거뜬하게 뛰어넘는 우상혁선수의 모습에는 비인기종목인 육상 분야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을 사투의 대상으로 하여 혼자 외롭고 피나는 훈련을 반복하는 고독한 시지포스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유명한 경구가 평범한 진실임을 그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한때 젊은이들 사이에서 ‘노오력’이라는 냉소적인 유행어가 돌았습니다. 경기 불황과 청년실업 문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기성세대는 사회구조적 문제와 부조리는 간과하면서 젊은이들에게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비판하자, 젊은이들은 그런 기성세대를 향해 ‘노오력’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비꼬았습니다. ‘노력’과 ‘노오력’은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지만 동시에 자유의지와 강요라는 차이도 보여줍니다. 
 
바꾸어 말하면 MZ세대로 지칭되는 요즘의 신세대들은 자신이 선택하는 노력에는 전심전력을 다해 투신하지만 강요된 노력에는 흥미도 보이지 않고 관심사에서 제외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지요. 심각한 가난을 경험하며 적성 같은 것은 고려할 여유가 없던 기성세대들의 눈에 요즘 젊은이들의 이러한 태도는 못마땅해 보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보십시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기성세대든 MZ세대든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공통분모는 있습니다. 노력으로 이룬 것만이 진정 내 것이라는 점을 공통적으로 인정한다는 말이지요. 결국 ‘노력’이든 ‘노오력’이든 자신의 피와 땀을 쏟아 넣어 얻은 결과물만이 진정 자신의 것이라는 보편적 진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세대의 차이를 떠나 ‘나를 만드는 것이 나의 노력’이라는 엄연한 현실은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