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지난 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학창시절에 읽었던 책들과 마주앉는다. 특히 서재에서 눈길을 끄는 책이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읽었던 오 헨리 작『마지막 잎새』다. 학창시절 누렇게 빛바랜 갱지에 조잡한 글자체로 인쇄된『마지막 잎새』는 어머니로부터 선물 받은 책이다. 선물을 받던 날 필자는 그 책을 읽다가 가슴에 안고 잠이 들었다.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 그런 내가 글쟁이가 되었다.   인쇄술의 발달과 다양한 읽을거리로 전에 비하여 어린이들의 지적 수준이 높아졌다. 세계명작 소설이 한창 대입시에 논술 비중이 클 당시 그것에 대비 초등학생용 교재로 출판이 되기도 했었다.    어머니가 준 선물인 서재에 꽂혀있는 단편 소설「마지막 잎새」가 초등학생용 입시자료로 활용되었다는 소리다. 소설 속 주인공 존시가 창밖으로 이웃집 담벼락에 그려진 마지막 남은 담쟁이 잎새를 바라보는 옆모습이 인쇄된 페이지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그 옛날 어머니가 선물로 주었던 그 때의 책과 새로 나온 책의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겉표지는 유광의 종이 재질로 그 위에 그려진 화려한 색상의 그림들이 아이들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자세히 살펴보니『마지막 잎새』라는 제호에 더욱 호기심이 간다.   이 소설은 익혀 알고 있듯이, 폐렴에 걸린 존시라는 여자 주인공이 이웃집 담벼락에 매달린 마지막 잎새를 바라보며 삶의 의지와 희망을 얻었다는 내용 담이다.   워싱턴 광장구역 그리니치 마을엔 무명의 가난한 화가들이 모여 산다. 그들은 집세가 싸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 때문에 이곳으로 모여 드는 것이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마주치고, 그리하여 가까워진 수와 존시가 함께 살 작업실을 이곳에 얻으면서 존시가 불행을 맞게 된다. 폐렴이 걸린 것이다. 요즘의 폐렴은 그저 그런 병이지만 페니실린 계 양약이 나오기 이전의 폐렴은 인간에게 내려지는 혹독하고도 가혹한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폐렴의 증세가 호전되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존시는 식음을 전폐한 채 심신이 허약해지고, 바람 앞의 촛불처럼 생명의 위태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이웃집 담벼락엔 담쟁이 넝쿨이 파란 잎을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그 담쟁이 잎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다. 하나, 둘, 떨어지는 담쟁이 이파리들을 바라보는 존시. 그는 마지막 남은 잎이 떨어지는 날 스스로의 목숨도 다할 것이라 예측하며, 운명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터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이다.   존시에게는 친구 수가 있었다. 어느 날 수가 노화가 베어먼을 찾아간다. 존시 이야기를 하며 도움을 요청한다. 노 화가 베어먼은 40년 넘게 그림을 그렸지만 단 한 번도 그림다운 그림을 그리지 못한 불운의 화가였다.   밤새 바람이 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다음날 커튼을 젖힌 존시는 담벼락에 매달린 마지막 잎새를 보고 다시금 삶의 강한 의지를 깨닫는다. 담벼락에 걸린 마지막 잎새는 노인 화가 베어먼이 밤을 새워 그린 그림이었다. 베어먼은 존시를 위해 몰아치는 비바람과 싸워가며 밤새 혼신을 다하여 명작을 완성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는 폐렴이라는 무서운 병을 얻어 세상을 뜨고 만다.   담쟁이의 마지막 이파리를 그리느라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했던 늙은 화가, 이것이 베어먼의 진정한 예술혼이다. 소설『마지막 잎새』는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다. 노인 화가의 희생정신에 매료되기 때문이다. 또한 요즘 각박한 세태이어서인지 베어먼의 타인을 위한 이타심이 한층 더 가슴에 와 닿아서일지도 모르겠다. 베어먼은 생전에 걸작 한번 그리지 못하였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릴 수 없는 가장 훌륭한 걸작을 그린 화가다.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하여 수많은 예술가들이 예술(회화)창작에 몰두 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마지막 잎새』와 같은 불멸의 명작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 생각 때문인지 소설 속 베어먼의 희생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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