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시내에서 동경주쪽으로 다가가다가 감포읍과 양남면으로 갈라지는 교차로가 나타나면 그곳이 바로 어일리다. 어일리는 동경주 교통의 요지다. 어일리는 경주시민은 물론 관광객들이 경주의 해양문화를 경험하고자 동경주를 찾아올 때 대부분 거치는 곳이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물류와 교통이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어일리에 5일마다 서는 전통시장이 문무대왕면공설시장이다. 경주시민에게는 ‘어일시장’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문무대왕면공설시장은 1942년에 개설됐다. 개설될 당시는 지금의 문무대왕면 행정복지센터가 앞쪽이 원래의 자리였다. 지금부터 무려 8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가 약 50년 전부터 현재의 자리로 옮겨 터를 잡았다.
문무대왕면공설시장은 새벽 일찍 장이 열리고 오전에 파장하는 전형적인 시골 오일장이다. 지역주민들이 직접 재배하는 계절채소와 농산물, 인근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약초, 동해의 청정해역에서 건져 올린 수산물, 빛깔 좋은 과일 등이 신선하게 거래된다. 여기에 농사에 필요한 낫, 호미 등 농기구부터 양말, 속옷 등 각종 의류, 그릇, 반찬통 등 각종 주방용품과 욕실용품 등 문무대왕면 주민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물품이 시장에 나온다. 경주 시내의 상설시장이나 대형마트에 오가기 불편한 마을의 어르신들에게는 매우 요긴한 만물상 역할을 한다.
이 시장에는 60여 개의 점포가 있고 50여 명의 상인들이 입주해 있으며 2018년 현대화사업을 거쳤다. 경주시와 경상북도 예산 20억원에 월성원자력본부의 사업자지원사업비 10억원을 보태 깔끔하게 단장했다. 하지만 새롭게 만들어진 깔끔한 점포는 역설적이게도 대부분 창고로 쓰인다. 점포 안으로 물건을 사러 오는 손님이 별로 없고 대부분 시장의 공터에 형성된 노점상인들에게 물건을 사기 때문이다. 장이 서는 날이면 입주 상인들과 인근 주민들인 노점상까지 약 150명이 장을 펼친다. 그래서 이 시장은 과거 우리 전통시장의 본래 모습인 노천시장의 형태를 갖추고 있어 더욱 정겹게 여겨진다.
문무대왕면공설시장의 주요 물목은 농산물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어물전이 근동에서 이름을 날렸다. 바다를 잇대고 있는 감포의 어시장보다 더 큰 규모를 가졌다고 알려져 있으니 이 시장의 어물전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 전통이 이어져 현재도 어물전이 없으면 시장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어물전의 한 상인은 “고기라고 생긴 것은 다 있다”고 자랑한다.
노점상의 좌판에 늘어놓고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대부분 할머니들이다. 자신의 집 텃밭에서 길렀을 것이 뻔한 상추나 고추, 호박 등 소박한 물건을 내놨지만 할머니들은 즐겁다. 수입도 중요하지만 5일마다 만나는 동료 상인들과 어울리는 것 자체가 행복해 보인다. 간혹 젊은 상인도 보이지만 몇 안 된다. 시골의 장터도 노령화의 사회적 문제를 비껴가지 못하고 있다.
문무대왕면공설시장의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김정순(83) 할머니는 시장이 이곳으로 옮기기 전 옛 시장터에서 밥집을 운영해 왔고 새 시장이 생기고 나서도 자리를 옮겨 ‘왕능식당’이라는 밥집을 50년 넘게 운영했다. 뷔페식으로 운영된 이 밥집은 문무대왕면민 뿐만 아니라 경주시내, 관광객들에게도 소문이 자자할 만큼 유명했다. 김 할머니는 “밥 장사로 큰돈을 벌었고 자녀들 뒷바라지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처음에 장사를 시작할 때 국수를 몇 솥이나 삶아서 내가도 모두 팔릴만큼 장사가 잘 됐다”며 “그 힘을 받아 50년 동안 줄곧 싸고 맛있는 음식으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허기를 달래 줬다”고 말했다.
김종섭(58) 상인회장은 “전통시장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없으면 전국적으로 전통시장은 폐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시골의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시장을 찾는 소비자의 발길이 뜸하고 상인들의 고령화로 점차 쇠퇴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시장을 아무리 잘 지어놔도 소용이 없다”고 탄식했다. 팔 사람도 살 사람도 줄어드는 현실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실제로 문무대왕면공설시장 상인의 평균 연령은 65세 정도다. 여기에 불과 1.5㎞ 인근에 일요일마다 열리는 와읍리 일요시장이 있기 때문에 장날이 겹치거나 앞뒷날에 걸치면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와읍리 일요시장이 관광객들에게 소문이 많이 나 있는 매우 개성 있는 시장이다 보니 매상에 많은 타격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문무대왕면공설시장의 상인들이 와읍리 일요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
김종섭 회장은 “약 30년 전만 하더라도 장날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성업을 했던 시장이지만 지금의 모습은 애석하기 짝이 없다”며 아쉬워 했다.12월에는 농산물 대잔치를 준비하고 있다. 1년에 한번씩 열리는 상인들의 축제다. 이날에는 농산물도 팔고 윷놀이도 하면서 주민과 상인들이 함께 어울리는 기회를 만든다. 이 행사는 올해로 5회째를 맞는다. 또 매년 설과 추석 등의 명절에는 월성원자력본부의 직원들이 장보기 행사를 갖는다. 이날에 구입한 물건은 경주시의 소외계층에 모두 전달된다. 김종섭 회장은 “월성본부의 장보기 행사는 명절 대목을 맞은 상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며 “월성본부의 상생 의지를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콘텐츠는 한수원(주) 월성원자력본부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