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맹목적 사랑은 존재하는 것인지 그 실체가 궁금하다. 중국 고전『한비자』의 중심 사상은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고 일렀다. 맹목적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그리스도교의 원죄(原罪), 불교의 아욕(我慾) 사상도 인간관계가 이기적으로 설정이 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진 못한다. 그러나 조건 없는 사랑이 딱 한 집단엔 있다. 부모와 자식지간의 사랑이다. 부모와 자식지간의 사랑은 맹목적이다. 예컨대, 불길 속에 갇힌 자식을 구하기 위해 화마에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맡기는 부모의 행동은 무엇인가.   금수(禽獸)의 세계에서도 맹목적인 사랑을 체험할 수 있으니, 사랑이란 참으로 불가사의한 수수께끼인 듯싶다. 필자는 물떼새의 모성애를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여우가 다가오자 위험을 느낀 어미 물떼새는 여우 앞에서 자신의 다리를 질질 끌며 상처 입은 몸으로 가장을 한다.   여우는 상처 입은 어미 물떼새를 가소로운 먹이로 여겨 한입에 삼키려 달려든다. 그렇게 하여 어미 물떼새는 자기의 새끼가 있는 둥지로부터 여우를 멀리 떼어놓는데 성공한다. 참으로 갸륵한 이 새의 모성애가 가슴에 각인되어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남방 큰 돌고래는 동료의 새끼가 태어날 때 곁에서 머물며 산파역할을 한다. 동료가 숨을 거둘 땐 마지막까지 호흡을 할 수 있도록 물 위로 몸을 올려준다고 한다. 이들이 베푸는 행위야 말로 조건 없는 사랑인 것이다. 후레자식을 욕할 때 ‘짐승만도 못하다.’라는 말을 쓴다. 요즘은 짐승만도 못한 인간이 주변에 참으로 많다. 제 부모를 때려죽이는 아들이 그렇고, 제 뱃속으로 낳은 핏덩이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모진 모성이 그렇다. 어디 이뿐인가. 친 딸을 수년간 성폭행 한 애비나 어린 손녀딸을 성폭행한 반인륜적이자 짐승만도 못한 친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경악을 넘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이렇듯 인간이길 스스로 포기한 채 또한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이 싫어지는 것은 과학문명의 발달 때문인가. ‘나만 잘살면 된다.’ 라는 이기심은 결국 스스로에게도 해악의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되니 인간은 금수만도 못한 듯 하다. 온 국민이 합창으로 부를 노래가 있다. 언젠가 어느 경찰서에서 로고송으로 부른다는 노래다. 그들은 직원조회 시간에 이 노래를 부른단다. ‘무조건’이란 유행가가 그것이다.   내가 필요할 땐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달려갈게/ 낮 에도 좋아/ 밤 에도 좋아/ 언제든지 달려갈게/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르면/ 한참을 생각해 보겠지만/ 당신이 나를 불러 준다면/ 무조건 달려 갈 거야/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은/ 특급 사랑이야/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당신이 부르면 달려 갈 거야/무조건 달려 갈거야   인간은 지극히 이기적인 동물이어서 이해득실을 기준으로 대인관계를 설정하게 된다고 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배앝는 표리부동한 자들을 대할 때마다, 잊지 않는 게 있다. “상대를 위해 베푼 일에 대가를 바라지 마라. 그것을 염두에 두고 행하면 인간관계는 무너진다.” 귀한 인맥을 중요시하던 어머님의 말씀을 늘 새기며 처신한다. 며칠 전일이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꼭 챙겨야 할 경사에 불참한 일이 있다. 행사의 주빈이 섭섭함을 문자로 전해왔다. ‘지난날 당신의 행사 때 부조금과 꽃다발까지 전해주며 축하를 해주었거늘 그럴 수가 있겠느냐?’는 내용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문자의 내용이 너무나 계산적이어서 자존심이 상했다. ‘조건 없는 마음’은 진정 없는 것인가. 대가성 없는 친절이나 배려가 진정한 사랑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희석되어가는 세상, 어디에도 정붙일 곳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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