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고 한다. 그 유래는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북방 지역에 가을이 되면 풀과 곡식이 풍성해지면서 가축들이 살이 찌게 된다. 이러한 풍경을 묘사한 표현이 천고마비로 이어졌다. 또한 가을이 되면 식량이 풍부해져 군대가 쉽게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시기는 전쟁의 위험이 높아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필자는 이를 해학적인 시로 써보았다. ‘예로부터 천고마비라 카믄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이지라예. 근데 요새는 그런 게 아니라고 한 대예. 그게 뭔 소리꼬. 아하 그게 천고 하늘은 높고 요기까지는 같은데 말이여. 마비 마나님이 살찐다 앙카유. 그래서 가을이면 마나님들 입조심하느라 난리 부르스랑께요. 아하 그래서 우리 마나님이 요새 잘 안드시는구만. 이보시라유 거 개 풀 뜯어먹는 소리 그만들 하시라유. 그런 게 아니고 천고 하늘은 높고 마비 마음이 살찐다 앙카유. 그렁께 책좀 읽으시라유. 알았시유 알았시유.(천고마비 권오중) 가을이 되면 가을의 들녘을 아름답게 수놓는 억새와 갈대가 있다. 그런데 억새와 갈대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필자는 ‘갈대는 갈색이고 억새는 은백색이다’라고 설명을 해 주면 고개를 끄덕인다. 또 다른 차이점은 갈대는 물을 좋아하여 물가에서 많이 자라고, 반면에 억새는 산과 들에 많이 자란다. 기온이 뚝 떨어진 이달 6일 서울에 첫서리가 내렸다. 서리는 대기 중 수증기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지표면에 닿아 액체 상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얼음 결정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하장군(夏將軍)도 서리 앞에서는 맥을 못춘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에겐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대하고, 자기 자신에겐 가을 서리(秋霜·추상)처럼 차갑고 엄격해야 한다는 말이다. 따가운 태양 볕에 빨갛게 사과는 익어가고 따가운 사랑 볕에 대추 볼처럼 곱게 사랑이 익어간다. 시원한 솔바람 더욱 맑아지고 살가운 갈바람에 귀뚜리 즐거이 사랑을 노래한다. 빨간 고추잠자리 가벼이 하늘을 날고 토실토실한 벼 다소곳이 고개 숙이니,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린 탐스런 포도송이 따듯 무서리가 내리기 전 우리의 사랑도 또옥 따야겠다.(가을사랑 권오중) 바야흐로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지나고 오상고절(傲霜孤節)의 시간이 다가왔다. 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라는 뜻으로, ‘국화’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때쯤이면 전국 곳곳에서 국화 행사가 벌어진다. 국화를 보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며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서정주 시인은 ‘국화 옆에서’ 읊었다. 또한 시낭송을 하는 사람들도 국화에 관한 시를 많이 낭송한다. 김재진 시인은 ‘사람이라도 다 같은 사람이 아니듯 꽃이라도 다 같은 꽃은 아니다. 눈부신 젊음 지나 한참을 더 걸어가야 만날 수 있는 꽃’이라며, ‘국화는 드러나는 꽃이 아니라 숨어 있는 꽃이다. 느끼는 꽃이 아니라 생각하는 꽃이다. 꺾고 싶은 꽃이 아니라 그저 가만히 바라보는 꽃이다‘라고 ‘국화 앞에서’ 시를 읊었다. 한편 가을철 맑은 날 새벽엔 이슬도 잘 나타난다. 물체 표면의 온도가 영하일 때 수증기가 얼어붙어 만들어지는 서리와 달리, 이슬은 기온이 영상일 때 대기 중 수증기가 물방울 형태로 표면에 맺히는 현상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가냘픈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이 덧없는 인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초로인생(草露人生)’이라고 문인들이 즐겨 사용하였다. 고혹적인 자주색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좀작살나무는 늦가을 햇빛을 유혹하고 있다. 하얀 진주 열매를 머리에 화사하게 단 고마리는 벌을 유혹하고 있다. 따스한 햇살에 반짝이는 탐스러운 열매에 산새들의 눈이 반짝 반짝인다. 김장 준비하는 손길, 도토리를 물고가는 다람쥐의 발길, 지금 세상은 온통 월동 준비로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