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농민·농부·전민이라 한다. 예부터 농민들 사이에 오가는 말씀 가운데 ‘가을걷이’가 끝나면 ‘한 해가 저문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농경시대부터 음력으로 일 년을 스물넷으로 나눈 계절의 구분으로 24절기(절후)를 정해 두고 거기에 따라 농사일을 처리해왔다고 한다. 오로지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하고, 백성은 먹을 것을 근본으로 하는데 농사는 의식(衣食)이 근원이 되므로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좋은 농사는 좋은 땅(옥토)에 좋은 씨앗, 그리고 부지런한 농부에 농업의 선진화에 좋은 영농기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농업은 천하의 대본으로 여기고, 크고 중요한 일을 근본으로 삼고, 한결 그 일에만 열심히 정성을 쏟고 충실한 삶을 살았다. 농사는 농가에서 농민들에 의해서 논이나 밭에서 곡류·채소·과일 등을 심어 가꾸는 온갖 일을 하는 농부요, 농사꾼이다. 농민이 가난하면 임금(왕)도 가난해진다는 속담이 있다. 농사는 가장 정직한 직업이라 열심히 일한 만큼 소득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가장 가치 있는 시민이라 한다. 그들은 강건하며 가장 독립성이 풍부하고, 가장 덕(德)에 뛰어난 지혜로운 순박한 자들이다. 농부가 씨뿌리고 수확하는 것을 보면 삶의 경작과도 같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흔히들 농사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부지런하고 건강하다고 한다. 일찍 일어나는 것은 할 일이 많은 탓이고, 일찍 자는 것은 생각할 것이 적기 때문이요. 욕심 없이 정직한 것은 정해진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인내심이 강하기 때문이라 한다. 대대로 내려오는 절기 문화에 이어온 전통적 문화는 ‘품앗이’ 문화라 한다.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일로 일을 하는데 드는 노력이나 수고를 서로서로 나누어 갖자는 위안으로 우리 문화가 시작이고 처음이라 한다. 추수가 끝난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서로의 수고를 감사로 여겨왔다. 경험이 최고의 스승이라고, 앞서 농작자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씨족사회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온 것이 우리 민족의 영농이라 한다. 토지의 가장 좋은 비료는 땅 주인인 농부의 발자국이라 당당히 두 발로 서서 쟁기질하는 농부는 무릎 꿇은 신사보다 더 높다는 말씀도 있다. 러시아 속담에 농부의 손은 비록 거칠고 까맣지만 그 가마에서 구워내는 빵은 부드럽고 하얗고 맛이 있다는 것이다. 문헌상의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농경사회의 시작은 원시시대가 서양을 앞서는 것 같다.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풍속은 추수가 풍족하게 이루어진 것은 조상의 은덕으로 여기고 조상에게 먼저 감사의 차례 (다례)를 먼저 올리는 미풍양속이 있었다. 이것이 서양에서는 추구감사절로 이어지는 관례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이 선량한 국민으로 칭송받는 것은 조상을 섬길 줄 아는 예절 있는 백성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한 해의 농사를 돌봐주신 조상님께 감사의 표시로 올리는 갖가지 예식을 가진 국민으로 널리 알려진 민족이다. 문헌에 잠깐 소개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때 동맹이라 하여 10월에 전부족이 한자리에 모여 선조인 ‘주몽신’에게 감사의 예식을 가졌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서향의 기독교에서는 추수 감사절이 1620년에 메이플라호로 신대륙에 이주한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민간 다음해 가을에, 처음으로 거둔 수확을 하나님께 감사한 일에서 유래된 것이다. 기독교 신도들이 미국에서는 11월 넷째 목요일에, 한국에서는 11월 중의 한 주일을 택하여 감사 예식을 정하여 온 것이다. 감사는 고맙게 여기는 것으로, 잊어서는 안되는 마음의 기억이며 숭고하고 위대한 교양의 결실로 야비한 사람에게는 발견할 수 없는 변명의 구실을 삼는 자이다. 서양의 교육자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는 감사하는 마음은 금방 노쇠(쇠약)해 버린다고 했다. 4자성어에 ‘명심누골’이라는 말은 마음에 간직하고 뼈에 새긴다는 뜻으로, 은덕을 입은 것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감사는 과거에게 주어지는 덕행이라기보다 미래를 살찌게 하는 덕행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