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공공기관 혁신을 강조했으나 모두 허사가 되었다. 공공기관의 수장을 노린 전직 국민의힘 중진 의원이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사가 늦어지자 초조해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갑작스러운 탄핵 사태로 공공기관 인사가 사실상 '올 스톱'되어 혼란이 커지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공백을 메우고 있다지만 공공기관 인사 문제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한 대행마저 야당 공세에 자리 지키기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 까닭이다. 총리실 고위 관계자는 "솔직히 지금 우리가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어딨냐"라고 토로했다. 야당은 미리 쐐기를 박고 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공공기관 인사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온 후로 미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공공기관 수장의 공백이 길어지면서 행정력 약화가 장기화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 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이날 기준으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87곳의 기관장과 감사 174자리 중 올해 연말까지 임기가 끝나는 자리는 31곳이나 된다. 탄핵 심판이 이어질 내년 상반기에 핵심 자리가 비는 29곳까지 더하면 60곳(34.5%)이 기관장이나 감사가 없는 상황을 맞게 된다. 기관장과 감사가 동시에 없는 곳도 한국관광공사·한국자산관리공사 등 11곳이다.
공공기관 임원 가운데 문재인 정부 막판에 임명돼 '알박기' 논란을 빚은 인물 상당수도 현직에 있다.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김제남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은 대선 한 달 전인 2022년 2월 10일 취임해 내년 2월 9일 임기가 끝난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 출신인 정기환 한국마사회 회장의 임기 시작·종료일은 김 이사장보다 하루 늦다. 에스알(SR· 수서 고속철도 운영사), 한국환경공단,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한국농어촌공사 등 비슷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강원랜드, 한국관광공사, 한국공항공사처럼 소위 알짜배기 공기업·준정부기관·기타공공기관 중에서도 30여 곳의 자리가 비어 있다.
이러다가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인사 다수가 윤석열 정부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임기 끝난 공공기관 수장이 물러나지 않고 후임이 없어 버티기 작전에 들어갔다. 공공기관 수장 자리는 정권 창출 공신들이 차지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공공기관 수장만큼은 조속히 임명해 행정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