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히 높은 산봉우리에 유니언 잭(Union Jack)이 휘날린다.얼음바위로 빛이 화살처럼 쏟아지는데 사진의 주인공은 '에드먼드 힐러리'가 아닌 '노르가이'였다. 8,000m 고지에서는 산소가 희박하다.
 
고글은 쓰고 있었을지언정 히말라야 현지인에게 카메라 작동 법까지는 무리다.
 
기후도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몰라서 원주민 셰르파를 찍었을 테지.
눈이 내렸다.창문을 여는 순간 찬란한 빛의 신호탄이 허공을 가로지른다.
갑자기 눈을 뜰 수가 없다.백설의 풍경은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있었나 싶을 지경인데 눈 뜨기가 힘들어? 
볕이 퍼붓는 골짜기에서 눈이 부시고 눈물이 난다는 설맹은 익히 들었다.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에서 정상을 앞에 두고 있던 힐러리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비슷한 징후였겠지. 얼음과 태양과 눈을 되비추는 빛의 아우름은 언제나 비경인데 눈 오는 밤이면 백야도 아닌 백야 때문에 잠을 놓쳐버리곤 했다.
여름은 밤이 짧아서 그렇다 쳐도 눈 쌓인 창밖의 미명 때문에 잠을 설치게 될 줄이야…
햇빛에 민감하다.작은아들이 닮았는지 볕에만 나가도 손갓을 쓴다.하필 그것을 닮았나 싶은데도 풍경은 왜 그렇게 좋은지.
체질적으로 약점이면 하늘아래 첫동네 풍경은 내키지 말아야 옳은데도 가끔은 현지 사람들이 부러울 만치 환상이다.
거대한 눈 산맥을 동산처럼 오르내릴 테니 작히나 좋았을까.
거주지부터가 해발 고도 평균 3,500m 지역이다. 내가 살게 되면 허구한 날 고산병에 햇빛 알레르기를 걱정해야 될 판인데도 끌린다. 버리기 힘든 차마 아픈 손가락이었던 것일까. 오랜 날 접근을 거부해 왔던 에베레스트의 신비야말로 끝없이 펼쳐지는 눈의 스펙트럼 때문이었던 것을.
국경을 가로지를 정도의 눈 산맥이다. 90% 이상의 높은 반사율 때문에 천년만년 녹지 않는 만년설은 자외선 골짜기였다. 
아무리 그래도 눈이 상할 수 있다니 묘하다. 
 
그래서 하필 설맹인가 싶지만 잠깐 눈 뜨기가 힘들어질 뿐 눈이 멀거나 하지는 않는다. 스키장이나 설원이 아닌 에베레스트라도 정말 그렇다면 고급스럽게 설맹일 리가 없지.
참 좋아하는 풍경인데 막상 보이면 찡그린다. 
눈 때문에 눈 뜨기가 힘든 괴리는 당혹스럽지만 그래서 시력이 좋은 것으로 보았다.
시력이 좋아서 눈부신 거라고도 볼 수 있겠다. 
볕에 나가도 아무렇지 않으면 조심성 없이 악화될 테니 필요 이상의 빛을 차단하는 시스템이다.
설맹의 징후는 쌓인 눈의 반사 때문이다.반사라고 하면 튕겨져 나가는 뉘앙스다. 흡수는 또 포용하고 아우르는 이미지였다. 
세상 지식보다 지혜보다 뛰어난 덕목은 넉넉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알면서도 그 품성을 담아내지 못했다. 뒷산에 올라가면 고을만치 보인다. 
그 다음 한 나라가 보일 정도의 산이 있고 훨씬 더 높이 태산은 천하를 굽어본다. 
태산은 에베레스트의 별칭이었다. 우연일까.  
한낮이 되었다. 동살이 밝아오면서 보석처럼 반짝이는 빛의 인드라. 한 때는 푹푹 쌓인 눈길에 첫 발자국을 내고 싶은 게 겨울 로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릎까지 쌓인 백설과 눈의 난반사가 혼란스러워지곤 한다. 
시력이 악화되면서 볕이 부담스러운 거다.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해서 방패막이라면? 너무 좋으니까. 너무 좋아서 버거울 때도 있었으니까.
새하얀 풍경을 보고 있으니 예의 또 눈물이다. 지난해부터 안구건조증에,오늘처럼 눈 쌓이는 날은 눈을 뜨기 힘들어서 눈(目)물인지 혹은 볕 때문에 녹아 버리면 눈(雪)물도 같다. 
눈이 내릴 때마다 눈이 아픈 것도 조금씩 단련 중이다. 
눈 골짜기 어드메 눈꽃새가 있었나? 사락사락 눈 덮일 때는 눈 속에서 울먹인다는 그 새가 떠오르는데.
제석천이 어느 날 아수라에게 쫓기고 있었다. 멀리 울창한 숲이 보이고 잠깐 숨으려는데 어디선지 예쁜 새소리가 들렸다. 
새가 놀라면 안 될 거라고 길을 바꾸는 통에 수레가 아수라 군대 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생사를 가르는 전쟁터에서 갑자기 사지로 들어간 폭이다. 
어리둥절한 아수라는 무슨 꿍꿍이가 있겠지 싶어 그대로 달아났다. 
쫓기고 쫓던 상황이 바뀌면서 제석천은 승리를 거두었다. 단지 새 한 마리 때문에.
전략이라고 할 것도 아니다.세상에 하나뿐인 무기 인드라 망도 있다. 
동쪽 구슬은 서쪽 구슬,서쪽 구슬은 동쪽 구슬에 비치면서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 비장의 카드였으나 싸움과는 먼 기질이다. 아수라가 먼저 공격해 왔을 것이다. 
그나마도 무기를 꺼내기보다는 한 마리 작은 새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승리한 것이다. 
무술을 배우는 사람들처럼 호신용이었으리.
우리 또한 그렇게 반전이면 운명도 아수라처럼 무너진다. 구실은 새소리였지만 쫓기는 체 갑자기 역습이듯 고단수 심리전이다. 
거창한 노하우보다 효과적이다. 진정한 저력은 숨겨둘 때 나온다. 
성능 좋고 강력한 무기일수록 조심스럽다. 
눈 쌓인 풍경을 좋아하면서도 찡그리는 것 또한 좋은 부분일수록 삼가고 절제하라는 뜻이었다. 
일이 잘 풀릴수록 삼가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게지.
좋은 만치 나쁜 게 있다. 
좋고 싫은 것은 결국 한 구슬 꿰어졌다. 하나가 끊어지면 모두가 흩어진다. 
제석천의 보물 1호는 인드라 망이었을 텐데 함부로 쓰지 않은 결과 새 한 마리 때문에 승리하는 쾌거를 올렸다. 
눈조차 뜰 수 없이 만들어서 무찌르는 것도 좋지만 새를 위한다는 꼼수면 꽤나 고품격일 텐데.
아수라는 끝내 제석천을 이기지 못할 테니까. 싸움을 좋아해도 그렇지 새소리 핑계 대고 말머리를 돌리는 데야 어쩔 것인가. 
뒤늦게 제석천의 의중을 파악한 아수라는 치를 떨었을 거다. 
의도적이든 전략이었든 눈도 깜짝 안 하고 무찌르던 저력이 눈꽃새 우는 겨울 서정에 촉촉 묻어난다. 
싸움만 생각하는 아수라에게는 까마득히 높은 경지였으리. 우물 안 개구리를 붙잡고는 바다를 얘기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새 한 마리 때문에 노심초사 마음일 때는 고난도 제풀에 달아나지 않을까. 
각박한 세상이지만 미물이나마 불쌍히 보는 마음이면 그 음덕으로 일이 잘 풀리기도 한다. 
서로 반대편 구슬에 비치는 인드라 방식도 적용해봄직하다. 
그로써 현란한 빛 때문에 앞을 못 보게 하는 무기였지만 기쁨은 불행과 슬픔 평화는 또 싸움과 질투의 구슬에 얼비친다는 것은 얼마나 희망적인가. 
촘촘한 그물코는 빠져나갈 수 없는 대신 보호막도 된다.
우리들 관계에서 갈등이나 번민은 부담이다. 
하지만 얽히는 대로 풀어야지 끊어내기만 해서는 회복이 어렵다. 누군가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놓쳐버리지만, 누군가는 극적으로 살리기도 하는 게 그 메시지다. 
인드라 망의 인연은 부담이지만 얽혀 있기 때문에 외롭지 않은 거다. 
눈(目)에 눈(雪)이 들어가서 눈(目)물일까? 눈송이 녹은 눈(雪)물일까? 라며 예쁘게 다듬어지는 한겨울 서정처럼.
눈 덮인 세상이 순백의 원시림처럼 빛난다. 
바람만 불어도 거미줄 같은 햇살이 창창 어우러진다. 우리도 그렇게 뒤얽혀 살지만,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풍경을 보라. 
인드라 망은 복잡해도 나는 너를 비추고 누군가 또 나를 비추면 물속에서도 젖지 않는 초승달처럼 자유롭다. 
새 한 마리 전법의 묘리를 파악했으니 더는 힘들지 않으려나?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유효적절 대입하는 것이다. 북극을 옮겨 놓은 듯 찬란한 설산 모퉁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