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사회로 진입하면서 우린 빠른 성장을 이뤘다. 이를 위해 서둘렀던 '빨리빨리 증후군'에 익숙한 세대여서인지 성질이 급한 것만은 틀림없다. 이 증후군으로써 집단이 앓고 있는 지병에 유독 화병이 많음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식당에 앉아서 밥을 기다리는 마음과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는 마음은 한없이 조급하다.
그러나 이율배반적이라고나 할까, 정작 필요한 곳에서의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용케도 잘 참아낸다.
이는 주위 사람이나 지인이 어떤 사안에 불합리한 일을 행했을 때 비판하기에 앞서, 늘 상대방 입장이 되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에 충실해서이랄까.
그럼에도 필자의 단점중 하나를 꼽는다면 옳지 않은 일엔 항상 주저치 않고 입바른 소리를 해서 득(得)보다 실(失)이 더 많은 경우이다. 이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엄혹한 가정교육에 의해서다. 여자라도 불의 앞에 비굴하지 말라는 타이름이 그것이다.
지인은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고 교외로 나간단다. 여름철 신록의 계절을 맞아 시골 소로(小路)를 자전거로 달리노라면 그간 맛볼 수 없었던 삶의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싱그러운 바람을 가르며 씽씽 내닫는 기분은 바이시클 족만이 갖는 특권이라며 매우 행복해 한다.
자전거를 타고 시골 길을 달리노라면 길섶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은 무릉도원을 무색하게 한단다. 또한 싱그러운 공기는 가슴 속 켜켜이 쌓인 속진(俗塵)까지 말끔히 씻어주는 기분이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전거를 타며 느림의 미학까지 절감한다고도 했다. 한 때는 느림의 미학이 유행처럼 생활의 화두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것은 사치 세대의 속도전에 밀려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곁에서 사라져 버린 요즘이다. 그리하여 이제 그 속도전은 인간이 지배하는 주권이 아닌, 일상적 용품으로 그 권한이 넘어가고 말았다. 속도전은 특히 유행을 앞서 산다는 철학 가벼운 여인네들을 노리개 감으로 삼아 횡포를 부리고 있는 듯하다. 일예로 눈만 뜨면 신기능을 앞세워 소비전략을 구축하는 가전제품 등이 그렇잖은가.
통신의 이동 수단이던 위치 알림 삐삐시대가 핸드폰으로, 핸드폰 시대에서 스마트 폰으로, 스마트 폰에서 이젠 AI 시대로 미래엔 어디로 방향을 틀지, 이는 전적으로 유행이란 권력자의 의도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다시금 느림의 미학이 사회전반에 만연된 '빨리빨리 조급증'을 치유할 날이 틀림없이 찾아오리라고 기대해 본다. 느림의 미학은 기다림을 잉태하기에, 불변의 생존으로 존재한다는 논리다.
느림의 미학이 낳은 기다림의 속성을 김민부 시인은 '기다리는 마음'이라는 제목을 달아 이렇게 읊었다. 훗날 이 시는 노래로 재탄생 했다.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기다려도 기다려도 임 오지 않고 /빨래소리 물레 소리에 눈물 흘렸네/ 봉덕사에 종 울리면 날 불러주오.저 바다에 바람 불면 날 불러 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파도 소리 물세 소리에 눈물 흘렸네'<생략>
 
천재시인 김민부는 31세란 젊은 나이에 화재 사고로 요절했다. 인생길에서 기다림의 깊이와 왕성한 창작열을 불태울 젊은 나이에 그는 안타깝게 이승을 떠났다.
기다림을 논하노라니 갑자기 교접 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방물 뱀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23시간을 기다리고서야 끝장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2,3초인 모기와 황소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굴뚝새는 일부다처로 개가를 자주하지만, 제비는 일부일처로 정절을 지킨단다.
태국의 시암 왕은 9천 명의 아내와 첩을 거닐었다.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도 7백 명의 아내를 데리고 살았다. 백제의 의자왕은 3천 궁녀를 곁에 두었다고 하니, 이들을 사랑했던 여인네들은 기다림의 미덕으로 오직 한 남자를 연모했을 것이다.
인간의 시간표는 어차피 기다림으로 짜여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서민들은 눈만 뜨면 열심히 일해서 하루빨리 부자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부모는 자식의 성공을 기다리고. 자식은 부모님의 무병장수를 기다린다. 형제들은 서로간의 우애가 변치말기를 기다린다. 남자는 사랑했던 첫 여인과의 재회도 가끔 꿈꾸곤 하잖은가.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극락에 이르기를 기다리는 게 인생사인 듯하다.
필자가 문인이 어서인가. 요즘 절실한 기다림이 있다면 '진달래꽃'의 김소월도, '기다리는 마음'의 김민부도 다시 살아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려 본다. 이 들이 만약 환생이라도 한다면 그들이 그동안 못다 한 문향 짙은 문학작품들을 다시금 대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