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 편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그녀가 피렌체에 살고 있을 때 하루는 지인이던 경찰서 수사과장이 와서, 카이사르에 대한 책을 빌려 달라고 했다.
한 달쯤 후 책을 돌려 주러 왔을 때 독후감을 물으니, 그는 '같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한번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더군요.' '만나면 뭐라고 하시겠어요?' '그가 지휘하는 군단에서 백인대장이라도 시켜달라고 부탁했을 겁니다'
로마 시대 최대 영웅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그는 대기만성형 인간으로 마흔 살까지는 출세하지 못하고 존재가 미미했다. 그의 정적이자 여섯 살 연상으로 승승장구한 폼페이우스와 비교된다. 하지만 그는 항상 여유를 가지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갔다. 알리아 총독으로 있던 50세에 로마에서는 군대를 이끌고 넘지 못하는 루비콘 강을 건너며 말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이날 이후로 두 영웅은 건곤일척의 자웅을 겨루게 된다. 파르살로스 회전으로 승리는 카이사르에게 돌아가고, 이집트로 퇴각한 폼페이우스는 죽음을 맞게 된다. 마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의 최영 장군과 항우와 유방의 초한을 연상케하는 대결은 카이사르에게는 클레오파트라를 선사하고 나일강 유람을 선물한다.
세상의 일인자로 군림하던 그는 불과 4년 뒤 B.C 44년 3월 15일, 급작스레 공화정주의자들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주모자들은 14명인데 이들이 휘두른 칼에 상처는 스물세 군데였으며, 치명상은 가슴에 받은 두 번째 상처였다. 토가를 다듬은 그는 바로 절명했고, 그 자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적이던 봄페이우스 입상 아래였다.
그의 오랜 연인 세르빌리아의 아들인 마르쿠스 브루투스는 카이사르가 애틋이 보살펴 주었으나 주모자들의 두목이 되어 결국 카이사르가 마지막 남긴 말은 '브루투스, 너마저' 였다.
그는 이튿날 연설에서 카이사르를 죽인 것은 '그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하기 때문' 이라고 했지만 들끊는 민심은 잠재울 수 없었다.
유언장을 통헤 카이사르가 후계자로 지목한 이는 여린 18세의 '옥타비아누스' 였으니, 마흔의 건장한 장군, 카이사르의 부장이던 안토니우스가 보기에는 조무라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씩 마음을 얻어가고, 동시에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와의 결혼 동맹으로 로마 시민의 민심을 잃어가게 된다. 결국 세상은 약해보이던 옥타비아누스가 차지하게 되니, 그의 정치력은 대단했고 카이사르는 그것을 알아본 것이었다.
옥타비아누스는 체질도 약하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군사적 재능이 부족했다. 그런 그에게 군사면을 보완할 수 있는 인물로 카이사르가 붙여준 사람이 아그리파였으니, 둘은 평생의 지기로 함께하게 된다.
아그리파는 군사적인면 뿐만 아니라, 로마군의 전진 기지이던 퀠른을 신도시로 만드는 등 수도교를 비롯한 도시 건축에도 재능을 나타낸다. 그는 후에 이름을 바꾼 '아우구스투스' 의 사위가 되어 가족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B.C 31년 9월 2일 지중해 그리스 악티움 바다에서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vs 옥타비아누스-아그리파 함대의 해전이 벌어진다. 안토니우스 함대는 함선 수와 지세의 우위에 있었지만, 전투가 지속되자 클레오파트라가 진영을 이탈하고 만다.
결국 이들은 패퇴해 알랙산드리아에서 안토니우스는 칼로 자결하고 여왕은 독사로 최후를 맞는다. 여인으로의 삶보다는 여왕으로의 죽음을 택한 것이다.
이들이 모두 등장하는 영화가 있었으니, 헐리우드 대작 클레오파트라(Cleopatra, 1963)다. 주연 엘리자배스 테일러 (Elizabeth Taylor)와 리처드 버턴(Richard Burton)은 실제로 이 영화를 찍고 결혼(1964~75)하게 된다. 특이한 것은 이혼과 재혼(1975~76)을 거듭하였는데, 이름이 양복점(Taylor) 과 단추(Button)이므로 인연은 있었나 보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는 신격화 되어 7월이 율리우스, 8월이 아우구스투스로 명명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1월 20일 취임식을 갖고 2기 임기를 시작한다. 그가 자신의 지지자들만이 아닌, 조지 워싱턴이나 에이브라함 링컨 같은 국민에게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