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집에 문상(問喪)을 온 사람이 밤새도록 영정(影幀) 앞에서 꺼이꺼이 통곡을 하더니, 날이 밝자 '이 집에 지금 누가 죽은 거요?' 라고 상주(喪主)에게 묻는다면?
나는 무신론자(無神論者)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비록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 해도, 적어도 신(神)은 우리가 현재 숭배하고 있는 그런 종류의 신은 아닐 것이라는 게 내 확신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서양 종교가 수입되기 전에 이미 많은 신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를테면 천지신명(天地神明) 일월성신(日月星辰)을 비롯해 용왕님, 서낭님, 조상신 등 다양한 신들이 각종 무속신앙의 대상이었던 것 같은데, 특히 '인디아' 같은 나라에는 신의 수가 그 나라의 인구수보다 많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이다.
뱀을 숭배하든, 돼지를 신으로 모시든 그것은 그 나라의 문화이며 종교의 자유라고 할 수는 있겠으나, 지자체나 국가의 리더는 신이 아니기에 결코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단지 그 공동체 구성원들이 임무를 부여한 향도(嚮導)일 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데 행로(行路)의 지형지물을 전혀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길을 가 본 적도 없는 자가 향도가 되어 무리를 이끈다면 그 집단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정신 이상자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앉아 있는데, 지켜보던 사람들이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그러니까 저 사람이 너무 취했나?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알아들을 수 없는 신령한(?) 주문(呪文)을 외고 있는 것을 보니 필시 도인(道人)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여 경배(敬拜)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양자물리학에서 양자(量子)는 관측하면 존재하지만 관측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대단히 모호해 보이는 학설이 있듯이, 사람은 바라보는 대상이 무엇이든 간에 스스로의 의식으로 대상을 분별하고 규정하려는 경향 때문에 터무니없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요석(尿石)을 은쟁반에 모셔두고 사리(舍利)라 생각하며 경배하면, 그 요석은 신령한 존재로 영험을 들어낼 것이며, 밀가루를 뭉치고 말려 영약이라고 믿으며 복용하면 난데없는 약효가 나타나기도 하니, 현대의학용어로는 그런 임상기전(臨床機轉)을 '플라시보효과'라 부른다.
신앙은 믿음의 플라시보효과, 부활(復活)을 믿는 자는 신도(信徒)요 믿지 않는 자는 이단(異端)이라는 종교가 있는데, 때문에 나는 항상 큰 의심을 품으라는 종교(佛敎)를 종교의 범주에서 제외하는 것이며, 내가 만일 중세기 유럽에서 태어났더라면, 의심 많은 나는 틀림없이 이단으로 몰려 화형에 처해 졌을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지금이 21세기임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실체를 오인한 것은 순진함이나 어리석음일 수도 있겠지만, 실체를 알고도 믿음을 거두지 못해 초래하는 불행은 스스로 감당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업보(業報)가 된다.
눈앞에 있는 독버섯을 따 먹고 죽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독버섯의 잘못인가 독버섯을 따 먹은 사람의 잘못인가?
육상 동물이든 해중(海中) 어류(魚類)든 간에 독성(毒性)을 가진 생명체들이 대개 현란한 무늬의 원색을 띠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다른 생명체들처럼 굳이 보호색을 가지지 않아도 나를 건드리면 죽는다는 일종의 오만한 경고가 아닐까?
사람 역시 원색을 띠는 사람들은 대개 독성이 강한 경우가 많기에, 우리는 원색적인 색깔 논쟁을 경계하게 된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쓰면 동문서답(東問西答)이 될 것인데, 동문(東問)에 뜬금없이 서답(西答)하는 것은 무식의 소치일 수도 있겠지만, 동문의 의미를 알면서도 애써 서답하는 것은 단지 질문을 회피하기 위한 기만화법(欺瞞話法)일 뿐이기에 참으로 사악해 보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