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영화 한 편이 회자 된 적이 있다. 영화 제목이 '죽어도 좋아'다. 
대중의 심금을 흔들었다는 이 영화를 필자는 아직까지 관람하진 못했다. 그러나 풍문에 의하면 이 영화 주제는 노인의 로맨스 즉 뜨거운 열정의 사랑 내용이란다.
귀동냥에 의하면 영화 내용은 대략 이렇다. 이 영화 주인공 73세의 박치규 할아버지는 우연히 공원을 산책하다가 자신의 이상형인 이순례 할머니를 만난다.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감 때문인지 일명 밀당을 할 겨를도 없이 둘은 동거에 돌입, 급기야는 냉수 한 그릇 떠놓고 예식을 치른다. 그리곤 신식 결혼식 사진까지 찍는다.
노인이라고 성이 안겨주는 희열에 둔감 하진 않았다. 둘은 뜨거운 밤을 지내며 사랑을 확인한다. 이 때 박치규 할아버지의 이순례 할머니한테 하는 말이 참으로 애틋하다. 아들 한 명 만 낳아달라는 간청이 그것이다. 
 
이순례 할머니에겐 가당치 않은 주문이련만 이 내용이 더욱 둘의 달콤한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게 한다.
이 영화 내용처럼 노인이라고 사랑의 감정마저 메마르진 않았다. 노인도 젊은이처럼 자신의 마음에 쏙 드는 이성을 만나면 가슴이 설레고 마음자락에 그리움도 고이기 마련이다.
이렇듯 젊은이들의 전유물로만 알고 있는 성은 노인들에겐 입에 올리는 일조차 민망하고 주착스런 일로 여기고 있다. 이제 현대사회는 속도 빠르게 고령화 시대로 치닫고 있다. 한 때 우리 고장의 일명 박카스 아줌마의 불미스런 행동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 적 있다.
이곳 중앙공원에 가면 윷놀이 및 장기, 바둑을 두며 한담을 나누는 노인들이 많다. 이런 노인들을 상대로 윤락 행위를 한다는 것이었다.
시장 원리로 따지자면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기 마련이다. 노인들이 평소 성에 대한 갈망이 있으므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젊은이의 전유물로만 여겨온 성에 대하여 이젠 노인의 성생활에도 우리가 관심을 보일 때다.
노인도 남은 삶을 본능을 충족시키며 사람답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잖은가.
경제학을 빌리자면 고령화 시대는 국가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단다. 이런 형국에 오래 산다는 것이 재앙이 되는 세태니 노인의 성에 대한 관심은 한낱 헛소리에 불과 할지 모르니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고령화 시대, 이를 좋게 표현하여 국가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의 제공 집단이라 정의 한다. 그래서 늙었으니 투표장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까지 생겨난 것이다.
국가 동력의 견인 집단인 젊은 세대에게 고령화 집단은 가장 무거운 짐이 된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다.
그러나 역으로, 그 늙은 집단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부국으로 만든 주인공이란 사실 앞에서 턱을 좌우로 흔들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건 그렇고, 요즘 젊은이들의 처지를 보면 딱 하기 그지없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 400만 명이 취업을 못하고 있단다. 적어도 우리들의 세대에는 대졸이란 간판이 사회적으로 하나의 신분이 되었다. 대학만 나오면 출세도, 또한 밥벌이도 용이 했던 것이다.
늘어나는 고령화 인구, 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젊은이, 이제 국가의 경영도 무상 시리즈 정책에서 벗어나 이들에게 과중한 짐을 지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은 타의든 자의든 신세대의 짐이 될 기성세대의 인물이다. 그러나 주눅 들지 말고 재기해 보자는 주문을 해본다.
기성세대에 나름대로 경험이란 값진 노하우를 가지고 있잖은가. 이 보이지 않는 힘을 활용해 보자는 것이다. 경험의 지식은 이론의 지식을 앞서는 법이다.
한편 노년은 그야말로 죽음에 둘러싸인 외딴 섬은 결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노래를 불러볼까 한다.
유행가 '내 나이가 어때서'이다.
 
야~~야~~야~내나이가 어때서/사랑에 나이가있-나-요/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그대만이 정말 내 사랑인데/눈물이 나네요. 내 나이가 어때서/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어느날 우-연히 거울 속에 비쳐진/내모습을 바라보면서 세월아 비켜라/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좋은 나인데
 
요즘 초등학교에선 노인분들을 초빙하여 방과 후 강사로 모시는 경우가 많아졌다.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암울한 미래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사회학자들의 사고를 뛰어넘어, 그동안 농축된 경험과 선견지명의 안목을 인정해주는 사회적 배려이기도하여 참으로 바람직 한 일이라 생각한다.
위 유행가 가사엔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랫말이 있다. 사실 그동안 나이라는 현실의식에 얽매여 위축될 때가 많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이 화두를 머리에 담고 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