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맞았던 정월 대보름은 설날 이후 처음 맞는 보름날이다.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빚 독촉도 안 한다는 큰 축제일로 상원(上元) 혹은 오기일(烏忌日)로도 불린다. 정월 대보름의 기원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삼국유사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
신라 소지왕 마립간이 정월 대보름에 천천정(天泉井)으로 행차하기 위해 궁을 나섰는데 갑자기 까마귀와 쥐가 시끄럽게 울었다.
그리고 쥐가 사람의 말로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따라가 보옵소서." 그러자 임금은 신하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가게 했다. 신하가 까마귀를 어느 정도 따라가다가 어느 연못에 다다랐을 때, 돼지 두 마리가 싸움을 하고 있었다.
신하는 돼지 싸움을 보다가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잠시 후에 연못에서 노인이 나와서 신하에게 편지봉투를 주고는 "그 봉투 안의 글을 읽으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읽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신하는 임금에게 편지봉투를 주면서 연못의 노인이 한 말을 전했다.
임금은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단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 편지를 읽지 않으려 했는데 옆에 있던 일관이 말하였다. "전하, 두 사람이라 함은 보통 사람을 말하고, 한 사람이라 함은 전하를 말하는 것이니, 편지의 글을 읽으시옵소서." 일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임금은 편지를 꺼내서 읽어 보았다. 그 편지에는 "射琴匣(사금갑 거문고 갑을 쏘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임금은 거문고 갑을 활로 쏜 다음 열어 보니 두 사람이 활에 맞아 숨져 있었다. 두 사람은 왕비와 묘심(妙心) 중이었는데, 중이 왕비와 한통속이 되어 임금을 해치려 했던 것이다. 그 뒤 정월 대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해서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까마귀는 효(孝)의 새로도 불린다. 옛날에 시골 마을에 덕망 있는 할아버지가 동산을 바라보다가, 우연히 까마귀 둥지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둥지 속에 늙은 어미 까마귀 두 마리가 몸이 허약해서 죽어가는 어미를 살리기 위해서 까마귀 자식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다.
첫째 까마귀는 먼 개울에서 입에 물을 잔뜩 물고 와서 어미 까마귀 입에 넣어주고 있었다. 둘째 까마귀는 들과 산에 있는 온갖 먹을 것을 잡아다 먹이고 있었다. 셋째 까마귀는 까마귀가 가장 소화가 잘되고 좋아하는 개구리를 잡아다 주었다. 넷째 까마귀는 물고기를 잡아다 먹였다. 다섯째 까마귀는 동네 사람들이 버린 음식을 물어다 먹이는 것을 할아버지는 유심히 보았다.
부정적인 이미지로 천대를 받던 까마귀가 먹이를 물어다 주며 효도하는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무릎을 탁 치면서 효도하는 새를 알게 됐다.
반포(反哺)란 먹이를 물어다 어미 입에 넣어준다는 뜻이다. 반포지효(反哺之孝)는 어미를 먹여주는 효도를 함으로써 공을 갚는다는 뜻으로 옛날부터 까마귀를 반포조(反哺鳥)라 불렀다.
대보름 전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고 잠을 참으며 날을 샜다. 잠을 참지 못하고 자는 아이들은 어른들이 몰래 눈썹에 쌀가루나 밀가루를 발라 놀려주었다.
아침이 되면 부럼 깨기 및 귀밝이술(이명주 耳明酒) 마시기를 시작하며, 새벽에 '용물뜨기'를 하거나 첫 우물을 떠서 거기에 찰밥을 띄우는 '복물뜨기'를 하였다. 오곡밥(찰밥, 약밥)과 진채(陣菜 묵은 나물)를 먹고 자정에 이르러서는 달집태우기 및 쥐불놀이를 하며, 풍년을 비는 행사를 했다. 여인들은 놋다리밟기를 했다. 동산 위에 보름달이 환하게 떴습니다/은은한 달빛이 미소 되어 번집니다/그런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요/보름달이 뜨면 눈물이 날까요/그리움이 보름달 되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어머니가 보름달 되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권오중, '보름달'정월 대보름날 축복처럼 밤새 눈까지 내렸다. 금년 겨울엔 동장군이 유독 눈을 많이 선물해 주었다. 동장군이 무척 미안했나 보다. 보름달 보며 을사년 푸른 뱀의 해 건강과 행복, 나라의 평안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