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7월8일 당시 김영삼대통령과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은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이때 북한주민들이 김일성의 죽음을 애도하며 일으킨 집단히스테리에 전 세계는 경악했다. 마치 사이비 종교의 맹신자들이 교주의 지시에 따라 집단자살등 죽음을 불사하는 것처럼 그들의 애도는 전율을 느낄 만큼 격렬했다. 세계인들은 비로소 북한의 폐쇄성을 재인식하게 됐고 그곳은 거대한 사이비종교 집단과 같은 이단의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처럼 북한은 집단화, 우상화되어 있고 그것이 통치의 중심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만명이 일점의 흐트러짐 없이 벌이는 집단체조와 공연물은 소름끼칠 정도의 전율을 가져오고 행사장에 모인 군중의 외침도 다르지 않다. 집단화 우상화의 주요 매개는 동상과 구호와 꽃이다. 웅장한 김일성동상으로 민중을 한곳으로 집중시키고 정기적인 참배로 세뇌시킨다. 북한사회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각종구호도 마찬가지이다. 이 구호로 천리마운동을 감행했고 김일성부자의 우상화도 심화시켰다. 남쪽과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켜 체제유지의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보고르 식물원에서 30여년간 개발돼 수하르트대통령에 의해 명명됐다는 김일성화는 북한에서 각종행사 때마다 주민들이 열렬히 흔드는 조화, 바로 그것이다. 김정일화도 개발돼 우상화, 집단화의 도구가 되고 있으며 두꽃의 전시, 축제도 성대하다. 전용비료까지 개발된 것을 보면 김일성부자를 상징하는 꽃의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다. 체제유지를 위한 우상화, 집단화의 도구, 구호는 ‘구호나무’라는 전대미문의 또다른 히스테리를 일으켜왔다. 나무에 김일성부자와 그의 가문에 대한 찬양문구를 새겨놓고 경배하는 우상화의 도구가 구호나무이다. 그런데 최근 그 구호나무에 이상이 생겼다고 한다. 량강도 김정숙군 김정숙읍에 있는 김일성부자의 대표적 우상화의 상징물에 방화로 추정되는 불이 나 수십그루가 소실됐다는 것이다. 주로 ‘백두 광명성 만만세, 3대(김일성·김정숙·김정일)장군 만만세’와 같은 구호가 새겨진 나무들이다. 평양에서 북경으로 가는 열차속 폭탄과 함께 북한사회의 미묘한 움직임으로, 흔들리는 북한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다. 감옥마다 남한의 드라마와 음악을 청취하다 붙잡혀온 사람들로 붐비고 시장경제가 꿈틀거리는 북한사회는 분명 변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천안함과 연평도 피폭으로 우리사회가 안보문제로 내홍을 앓고 있지만 어쩌면 북한은 물밀듯 몰려오는 자유와 개방, 시장경제에 대한 동경, 인권문제로 우리보다 더 깊은 병에 걸려 있는지 모른다. 천안함과 연평도는 우리사회의 안보의식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도발에 맞서 응징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도 형성됐고 부족한 무기를 보완하는 장치도 마련했다. 군의 작전개념도 달라지고 체제도 야전위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유비무환의 태세를 갖추는 계기가 됐으니 불행중 다행이다. 이제는 남북문제를 사회학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무기는 단순하다. 대외적으로는 핵을 앞세워 힘의 우위를 내세우고 대내적으로는 우상화 , 집단화로 체제유지를 도모하고 있다. 핵개발은 국제적 반발에 직면해 있고 대내적으로는 시장경제의 태동과 남한문화의 유입, 우상화에 대한 반발로 흔들리고 있는 것이 지금 북한의 현실이다. 체제우위의 장점은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유와 인권을 실현한 모범적 국가이다. 세계가 주목하고 그 발전상을 모델로 삼는 몇 안되는 국가중 하나이다. 북한과 비교하면 모든 면에서 우위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패배주의와 열등의식을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북한사회를 파고 들면서 그들의 취약성에 대응한다면 연평도 장사정포보다 훨씬 위력적이 될 수 있다. 북한사회는 분명 변하고 있다. 지금이 통일에 대비,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다. 조만간 대형 동상이 구호나무처럼 불타고 김일성화와 김정일화가 발밑에 짓밟힐 날이 올 것이다. 북한사회의 움직임을 면밀히 해부하는 것은 군사적 대응보다 중요한 일이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