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 바다가 주 서식지인 혹등고래가 적도 부근 따뜻한 바다에 와서 새끼를 낳고 다시 새끼를 데리고 고향 바다로 돌아가는 BBC 자연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어미 혹등고래는 새끼에게 젖을 먹이며 북쪽 바다로 돌아가는 동안 자신은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는군요. 몸길이가 15m 내외에 40t 가량의 거대한 어미 옆에 아직 작고 어린 아기고래가 바짝 붙어서 헤엄치다가 피곤해지면 어미의 지느러미 아래에서 쉬어 가는 장면이 어디서 본 그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가 떠오릅니다. 암각화의 탁본을 뜬 그림에서 새끼를 업고 헤엄치는 어미고래가 있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시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신석기시대에 새긴 바위그림입니다. 한 삼십 년 쯤 전 당시 가입해 있던 답사모임에서 선사시대의 유적지로 반구대를 답사했습니다. 막상 현장에 도착해서 보니 대곡천 하류에 들어선 댐이 원인이 되어 그림이 새겨진 바위벽 앞을 흐르는 하천의 수위가 높아져 실제 암각화가 있는 절벽 가까이는 가지도 못하고 피안의 언덕에서 물에 반쯤 잠겨 방치된 바위벽만 보고 발길을 돌리며 아쉬워했습니다.
다행히 반구대 암각화는 1995년에 국보로 지정되었고 이후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암각화 탁본에서 상세한 그림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바위 면에는 호랑이, 사슴, 멧돼지 따위의 육지동물과 이 보다 훨씬 더 많이 여러 종류의 고래 그림과 고래잡이배와 배에 탄 선원들, 그물을 치는 그림, 어획물을 가두기 위해 쳐 놓은 울타리 등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림 속에는 귀신고래, 향유고래, 범고래, 혹등고래 등 다양한 고래들이 떼를 지어 헤엄치는 속에 새끼를 등에 업은 귀신고래와 새끼고래를 가운데에 두고 보호하듯 헤엄치는 두 마리의 어미고래도 보입니다.
고래잡이의 안녕을 비는 무당이 무아지경으로 춤추는 모습도 새겨져 있군요.
지금이야 우리 바다에서 고래를 쉽게 만나기 어렵지만 반구대 그림이나 옛 문헌들을 참고하면 한때 우리 바다, 특히 동해는 고래가 많이 살고 자주 목격되었을 것입니다.
장생포를 비롯한 울산만이 고래잡이의 중심지역이 되었고 이는 국제포경위원회의 포경금지협약으로 고래잡이가 금지될 때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암각화에 고래잡이를 교육시킬 그림을 새겨둘 정도로 우리 생활에 밀접했던 고래는 남획으로 개체 수가 현저히 줄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큰 바다를 무대로 삼는 고래는 진취적인 희망이나 꿈이란 의미를 담은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70년대에 대학생활의 낭만과 꿈을 담은 어느 영화의 OST인 '고래사냥'이라는 노래는 모르는 젊은이가 없다시피 할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답답하고 암울한 유신 말기의 사회분위기 속에서 옆 사람에게도 속내를 함부로 드러낼 수 없고 대학교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서넛 이상만 모여도 번득이는 감시의 눈길이 어디에선가 즉시 달려오던 그 시절에 옴치고 뛰기도 어려운 자신들의 생활을 '바보들의 행진'이라고 자책하는 속에서도 고래는 젊은이들이 꾸는 꿈이고 희망이며 유토피아였습니다. 학교 주변 생맥주집에서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면 너나할 것 없이 삼등 완행열차를 타고 동해바다로 고래를 잡으러 가자며 고래고래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곤 했지요. 그때 당신들은 어떤 꿈을 지녔었나요?
청춘은 순진하여 감동을 느낄 줄 알고, 쉽게 죄악에 병들지 않으며, 이상을 실현할 자신과 용기를 가진 인생의 황금시대라고 예찬한 수필도 있거니와 청춘의 이상이 황혼기에 그대로 실현되어지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엘레시움(Elysium)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난관과 좌절과 포기의 유혹이 복병처럼 숨어 있지만 방향을 잃지 않고 그곳까지 가는 동안 거칠고 모가 나 있던 젊은 꿈과 이상은 모난 부분이 부드럽게 다듬어지고 서툴고 거칠던 모습은 시간에 의해 단련되어 성숙한 향기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청년이 지녔던 이상은 시간이 흘러도 부패하여 악취를 풍기지 않습니다. 소년이 가슴 속에 품었던 어린 고래는 소년과 함께 자라서 멋진 흰수염고래, 향유고래, 혹등고래가 되어 바다를 누비며 부드러운 그들의 노래를 부를 것이니까요.
젊은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하나씩 품고 있던 우리들의 고래는 아직 숨 쉬고 있을까요? 혹 기성세대는 죽어 부패해가는 고래라고 할 MZ세대들 앞에서 우리도 싱싱하게 펄떡이는 고래를 품던 적이 있었다는 변명이라도 할 건가요? 깊은 밤 나는 심해의 고래 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고 / 그들이 동료를 부르거나 먹이를 찾을 때 노래하는 / 길고 아름다운 허밍에 귀를 기울이곤 한다 / 맑은 날이면 아득히 망원경 코끝까지 걸어가 / 수평선 너머 고래의 항로를 지켜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고래는 사라져버렸어 / 그런 커다란 꿈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아 / 하지만 나는 바다의 목로에 앉아 여전히 고래의 이야길 듣는다송찬호 시인의 시 '고래의 꿈'의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