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산 강변로가 개통된 후로 종일 수많은 차량이 바삐 다닌다. 강변은 많은 공재원을 투입하여 하천 제방을 튼튼하게 쌓았고 일부분에는 주차장과 산책로, 파크골프장을 만들어서 향민들이 건강증진과 사교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아름답게 꾸민 강변 산책로에는 많은 시민이 조석으로 줄지어 걷고 있다.
서천교, 문천교, 황남대교, 황금대교, 월정교를 비롯한 많은 대교가 강을 가로지르며 건설되어 문명의 흐름을 촉진 시켜 주고 있어서 퍽 의미 깊게 느껴지고 있으나, 바삐 달리는 무수한 차량이 뿜어대는 매연은 주변 순박한 민가에 공해를 주고 있다.
이 향산강은 대한민국에서 동해로 흐르는 강 중 가장 긴 강이다. 환경부에서 발간한 한국하천일람에서 보면 이 강은 경주시 서면 도리 인내산에서 발원하고 있다. 향산강이 이룬 평야를 형산강평야(兄山江平野)라고 부르며, 동해선과 국도 제7호선이 강을 따라 위치하고 있어서 교통이 편리하다.
신라 시대에는 왕도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하천 중의 하나였다. 강 주변에는 신라 때의 고분군이나 유적들이 많아, 경주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형제산 때문에 형산강으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이 산은 경주시와 포항시의 접경인 강동면 동쪽에 소재하는 제산(弟山)과 마주하고 있는 형산(兄山)에서 유래되었으며, 형제산 때문에 남천, 북천, 기계천의 강물이 모여서 큰 호수를 이루었고 장마철이면 항상 범람하여 넓은 안강(安康)평야가 침수되어서 경주까지 많은 피해를 입었다.
형산강에 대한 유래에서 보면, 경순왕이 즉위하였을 때, 나라의 형편은 서남은 후백제, 동북부는 고려 왕건의 영토가 되어 국토는 왕도를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만을 유지하고 후백제와 고려의 싸움 속에서 명맥을 이어갈 정도로 형세가 고단하여 장래를 예측할 수 없었다. 경순왕이 사관에게 점을 보게 하였더니, 사관은 동쪽의 임정현(現 안강·포항 지역)에서 왕위를 위협하는 역적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또한 역적을 막기 위해서는 안강호수의 물을 영일만 어룡사(漁龍沙)로 흘려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경순왕은 형제산의 단맥(斷脈)을 위해서 하늘에 올라가 백일 동안 기도하면서 종묘사직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땅에서는 태자가 천지신명께 기도하였는데, 태자는 기도 끝에 큰 뱀이 되었다는 것이다.
태자가 용이 되려면 누군가가 그를 용으로 불러 주어야만 했기에, 태자는 길가에 누워 행인이 용이라 불러 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 그를 보고 큰 뱀이라 부르며 겁을 먹었다.
어느 날 한 노파가 손자를 업고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 손자가 누워있는 태자를 바라보고 용이라고 불렀다. 태자는 자기를 용으로 불러 준 아이에게 안강호수의 물이 빠진 땅을 주고 그 땅을 아이의 이름을 따서 ‘유금’이라고 불렀다. 한편, 형제산은 형산과 제산으로 갈라지고, 그 사이로 강이 흐르게 되었는데, 그 강을 ‘형산강’이라고 하였다. 
 
이런 유래를 지닌 형산강을 서울의 한강처럼 개발한다는 보도가 있으니 참으로 기대되는 바가 크다. 지금은 강에 철새들이 날아와 고기를 잡느라 물속을 살피고, 넓은 강변에 굳게 서 있는 갈대가 새하얗게 군락하고 있어서 볼만한 강변 풍경꺼리가 되고 있다.
오후 늦게 강변 산책로를 따라 묵묵히 걷다가 흐르는 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찬 바람에 말라가는 갈대를 바라보니, 문득 시상이 떠올랐다. 벤치에 앉아 쉬면서 ‘형산강변에 앉아’라 제(題)하며 중얼거려 보았다. 흰머리 갈대가 침묵하는 강변. 엄동(嚴冬)에 세월은 가지만 유수(流水)는 쉼을 잊은 곳. 서산 일몰(日沒)이 화폭(畫幅)을 투사(透寫)하는데 빈자리 벤치는 기다림에 지친 듯 목적 없이 마음을 울리네. 척박(瘠薄)한 토양에 스스로 자란 갈대 무리 소란한 특검법 정쟁(政爭에 침묵의 항변(抗辯)인 듯 여기 흐르는 강물에 세한(歲恨)을 토(吐)하네. 창천(蒼天)을 향해 소리 없이 토하네. 곧은 자세로 하얗게 토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