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코레kore 조각상에 보이는 미소를 알카익 미소라 한다. 이 미소는 그 시기가 행복한 시기(알카익 시기)임을 암시하고 있다. 기원전 12세기에서 기원후 5~6세기에 걸친(소크라테스 이전) 시기로 철학이 기지개를 편 시기이다. 이 시기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변하지 않는 물질인 아르케archē를 탐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필자가 처음 코레 조각상을 책에서 보았을 때 입술에는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먼 옛날 이야기가 이슬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이 미소는 단순한 표정이 아니라, 인간이 처음으로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을 깨우쳤을 때 나타난 순수한 경이로움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지만, 눈웃음 없는, 마치 먼 곳을 응시하듯, 어딘가 모르게 흐릿한 표정, 그 미소는 시간을 거슬러 강을 건너온 듯, 낯설지만 익숙한 표정이었다. 때문에 학자들은 그리스 역사상 전쟁과 갈등이 없던 가장 평화로운 시기로 보고 있다. 탈레스는 ‘물’, 아낙시만드로스는 규칙이나 적용 범위가 없는 ‘무한정’, 아낙시메네스는 ‘공기’, 파르메니데스는 ‘존재하는 것만 존재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라고 생각한 철학자들이 살았던 때이다. 알카익 미소는 완벽한 대칭 속에 숨겨진 불완전함과, 눈썹, 입술 선이 기계적인 정밀함 대신 인간 손길이 배어 있는 따뜻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첫사랑 설렘처럼, 아직 완성되지 못한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 아닐까? 극대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많은 미소를 보고 있다. SNS 속 이미지 프로그램 필터를 통과한 화려한 미소, 반짝이는 치아 광고 속 미소, 화려한 연예인 미소 등,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알카익 미소가 은은하게 보내오는 순수함을 따라갈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디지털 시대 화려한 조명 아래, 우리가 지난날 잃어버린 무언인가를 다시 생각해 내는 듯한 미소이다. 필자는 여유를 가지고 찬찬히 코레 조각상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 미소 속에는 인류가 처음으로 아름다움을 깨달았을 때 느꼈던 순수한 기쁨,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던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표정이 아니라, 인류 문명이 걸어온 길을 증언하는 시간에 대한 상징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가 진심으로 근본으로 들어가 살펴야 할 미소는 어떤 미소일까? 화려한 조명 아래 반짝이는 하얀 치아가 보이는 미소인가, 아니면 코레 조각상 속에 영원히 새겨진 알카익 미소인가. 그 답은 아직도 시간 저편에서 알카익 미소를 머금은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아마 그녀는 늘 조용했을 것이다. 말수도 적었고, 눈빛도 깊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말을 걸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은은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코레 조각상 미소는 단순하고 순수했지만, 그 안에는 무언가 깊은 내면세계가 숨겨져 있는 듯 했다. 어느 날, 누군가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말없이 조용하게 있느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라고 하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여전히 그 익숙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바깥세상은 너무 소란스러워서요. 마음 안으로 들어가면 고요하거든요.” 그녀 미소 속에 숨겨진 깊은 내면을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녀는 시끄러운 바깥소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고요한 내면세계를 지키며 살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단순한 미소는,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알카익 미소는, 광속으로 변하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고요함과 단순함, 순수함을 간직한 채,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세계를 꾸려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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