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인 아파트를 찾았을 때 일이다. 고층에 사는 그녀 집을 찾아가기 위하여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다. 1층에 위치한 아파트 현관에 금줄이 처진 것을 보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대하는 금줄이다. 순간 마치 귀물을 대하는 기분이었다. 내려온 엘리베이터도 놓친 채 그 집 앞에 한동안 서서 금줄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1층 아파트에 사는 집주인이 아기를 순산했나보다. 자세히 살펴보니 고추와 숯이 새끼가 꼬인 곳마다 달려 있었다. 이 금줄로 보아 이 집에선 아들을 낳았나 보다. 더 세세히 살펴보니 금줄의 새끼는 왼쪽으로 꼬여 있었고, 그것 중간엔 여느 것과 달리 큰 빨간 마른 고추가 떡하니 끼워져 있었다. 예로부터 금줄의 새끼줄을 왼쪽으로 꼬아온 데는 이유가 있단다. 오른쪽 손은 자주 써서 세상 때가 묻어 세속적이고 왼손은 그렇지 않다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그래 신성스러운 손인 왼 손으로 꼰 새끼를 금줄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금줄을 통하여 집주인의 아기 탄생을 알리는 기쁨을 짐작하고도 남음 있었다. 필자역시 내일처럼 반가웠다. 요즘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거나 아기 낳기를 포기한 세태여서 더욱 그랬다. 이 금줄을 대하노라니 어린 날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어렸을 때 일이다. 어머니는 장독대에 장을 담그고 항아리에 숯, 솔가지, 한지 등을 매단 금줄을 치곤했었다. 아마도 어머닌 행여 장류에 부정한 기운이 서려서 맛이 변하기라도 할까봐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우리 집 또한 동생들이 태어날 때마다 대문 앞에 금줄이 쳐지곤 했었다. 이 때 딸을 낳으면 솔가지와 숯, 한지 등을 매달았다. 아들을 낳으면 붉은 고추와 숯, 한지 등을 매달아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린 것은 순전히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서 우러나온 속신(俗信)이다. 아직 면역력이 약한 신생아의 무병과 산모 건강을 염려하여 외부인 출입을 금줄로써 금기시 했던 것이다. 이 금줄을 논하노라니 ‘대문에 달린 금줄’ 이란 노래가 입안에서 절로 흥얼거려진다. “ 수양나무 그늘 밑에 소곤소곤 정다웁던/삼돌이와 순이 집에 오늘은 경사났네/대문에 대롱대롱 고추달린 저 금줄/옥동자를 낳았나요. 금동자를 낳았나요/첫사랑 무르익어 순이 집에 경사났네”   이 노래 가사처럼 남녀가 나무 그늘 밑에서 밀회도 즐기고, 사랑도 나눠야 인간의 역사는 이루어진다. 사랑은 삶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인류가 존재해온 것은 남녀의 뜨거운 사랑에 의한 결실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잖은가. 그러나 요즘 세태를 보면 남녀 간의 사랑도 예전 같지가 않다. 아무리 청춘 남녀가 사랑을 하여도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쳐서 더 이상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기 예사다. 우선적으로 결혼을 하려면 신혼살림이 필요한데 이 또한 장만 하는 일이 녹록하지 않다. 혼수품인 세탁기, 냉장고, 전기밥솥, 텔레비전 등의 가전용품 값만 하여도 구입비가 대략 천 여 만 원이 넘는다. 어디 이뿐인가. 우선적으로 신혼살림을 꾸릴 집만 하여도 얼마나 부담스러운가. 전세는 물론이려니와 젊은이들에게 내 집 마련의 꿈은 요원하기만 하잖은가. 정부의 신혼 부부 보금자리 주택 혜택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또한 보편적으로 누구나 누리기엔 아직도 여러모로 부족한 면이 많다. 어디 이뿐인가. 대학을 나오고도 변변한 직장 잡기가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기 형국이다. 아직도 수백 만 명의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이니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캥거루족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아이를 낳아 키우려고 해도 우선적으로 산후 조리원 비도 역시 만만치 않다. 그 또한 수 백 만 원에 이른다. 요즘 아기 낳기를 권장하여 정부에서 신경을 많이 써 주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만으론 역부족이라는 개인적 생각이다. 이런 사정이니 어찌 젊은이들이 마음 놓고 사랑하고 결혼에 이를 수 있으랴. “인구가 감소된다.” 걱정만 하지 말고 좀 더 피부에 와 닿는 정부 정책이 필요 한 시점이다. 먼저 젊은이들이 결혼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는 방편으로 작은 일부터 실천해 주었으면 한다. 기업과 정부가 힘을 모아서 신혼부부에 한해서는 혼수용품인 가전제품만이라도 파격적인 가격으로 인하 하여 판매하면 어떨까? 기업의 평소 이윤을 다름 아닌 신혼부부에게 되돌려 주는 차원으로 말이다. 필자가 어렸을 때만해도 마을 곳곳에서 두 어 집 건너 금줄이 쳐지곤 했었다. 필자 친정어머니도 부른 배가 꺼질 만하면 또 배가 불러오곤 했었잖은가. 그 결과 오늘날 필자에겐 형제가 많다. 올 한 해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가슴마다 사랑을 싹 틔워서 마을 곳곳에서 집 현관 앞에 내걸린 금줄을 자주 대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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