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한 곡조엔 시대상은 물론, 우리네 삶이 한껏 용해돼 있다. 대부분 노래 가사들이 사랑, 이별이 주류 아니던가. 그래서인지 애조 띈 유행가는 입속으로 흥얼거리기만 하여도 어느 사이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곤 한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시청한 노래만 해도 그렇다. 어느 대중가요 경연 대회 TV프로그램을 시청하다말고 자신도 모르게 눈가가 젖었기 때문이다. 그날 그 프로그램에서 트로트 경연 대회를 치룰 때 일이다. 참가자인 젊은 청년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돌연 ‘주르륵’ 눈물을 흘린다. 필자 역시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 동안 마치 한 편 시와 같은 가사에 자신도 모르게 함몰 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처음엔 젊은이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가 아마도 필자처럼 스스로 감정에 몰입 돼서 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때였다.    그 참가자가 2년 전 신장암 수술을 받은 날이 하필 그 날이라는 사회자 설명이 있었다. 이 말에 그가 눈물을 흘리는 연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 청년이 눈물을 흘리며 부르는 노래에 귀기울여보니 나훈아의 ‘공(空)’이었다. 이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은 몹시 처절하기까지 했다. 곱씹을수록 노래 가사가 구구절절 의미심장하다. - ‘살다보면 알게 돼 일러 주지 않아도/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살다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우리 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지/잠시 왔다 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갈 세상/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살다보면 알게 돼 버린다는 의미를/내가 가진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을’-<후략> 위 노랫말은 음미할수록 가사마다 인간 존재 해명을 녹여내었다. 이 가사 대로라면 기껏 살아야 백년도 못사는 우리네다. 그럼에도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욕심주머니를 잔뜩 채우려고 발버둥치곤 한다.    트로트 경연대회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 젊은이도 모르긴 몰라도 암이라는 쇠심줄 같은 병마 앞에서 얼마나 절망 했을까. 그가 병마의 손아귀에 사로잡혔던 절체절명의 순간, 부도 명예도 사랑도 한낱 뜬구름이었다는 상념에 사로잡히진 않았을 런지. 그러하기에 자신의 지난 심경을 대변해 주는듯한 이 노래를 부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지도 모르겠다. 이 젊은이 모습에 그 자리에 모인 많은 관중들도, 심사위원들도 눈가를 훔쳤다. 문인은 자신의 상상력을 천리를 뻗친다고 했던가. 갑자기 엉뚱한 공상을 하기 시작 했다. ‘만약 관중석을 메운 사람들도, 심사위원들도 전부 로봇이라면 노래 한 곡조에 이토록 심금이 흔들려 눈물바다를 이루는 진풍경이 벌어졌을까?’라는 궁금증에 의해서다. 하긴 그동안 영화 및 문학 작품 속에만 등장해 온 로봇이 언제부터인가 발 빠르게 인간 삶 속에 깊이 침투, 우리네 영역을 차지하기에 이르렀잖은가. 로봇이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고, 고기를 굽고, 차를 끓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집도 뚝딱 짓는다. 심지어는 농구 시합을 구경도 못한 로봇이 이젠 덩크슛까지 할 정도로 진화 됐다고 하니, 어쩌면 이런 능력도 가능할 법하다. 이렇듯 로봇의 실상을 떠올리자 ‘만약 머잖아 로봇 세상이 돌아온다면 그들도 어느 일에 합격 및 선정 당락을 좌우하는 평가 심사에서 우리 인간들처럼 학연, 지연, 혈연에 치우친 나머지, 형평성을 어기는 선택을 할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이는 요즘 선거관리 위원회에서 행했던 자녀 특혜 채용이 수면 위로 떠올라서다. 신입 사원 채용 시 공정성과 엄정한 심사 규정을 제대로 지켰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불미스러운 일이었다. 이럴 때 냉철하고 감정 개입이 안 되는 로봇이라면 어쩌면 주관적 보다는 객관적인 견해로 업무에 적합한 인물을 선택했을 것이다. 적어도 어떤 권력의 압력이나 입김에 의하여 자격도 없는 사람을 자리에 앉히는 부정은 저지르지 않을 듯하다. 삶 속에서 우린 늘 타인이 내리는 평판 및 평가에 노출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삶 속에서 능력을 판가름하는 서류 심사를 비롯, 어떤 관문을 통과 할 때 적임자인지를 판별하는 판단의 가늠자에서 자유롭지 못하단 뜻이다. 특히 문학을 하는 필자로선 문예 기금 수혜 선정에 늘 신경을 곤두세웠잖은가. 돌이켜보니 위 노래 가사처럼 그게 어리석었다는 것을 새삼 깨우친다. 심사라고 다 공정하진 않았다. 때론 짜고 치는 고스톱을 행한 적이 있잖은가.    몇 해 전 일이다. 모 문예 백일장에서 심사위원이 자신의 자녀를 셀프 심사하여 상금까지 수상케 했었다. 한 때 이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서 뉴스거리가 되어 언론을 도배한 것만 살펴봐도 이를 증명한다. 그래서인지 미래에 만약 로봇이 심사위원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호기심이 발동한다. 보나마나 우리들과 다른 잣대로 심사를 할 게 뻔하다. 출중한 능력과 탁월함을 보인 작품이나 인재를 엄격하게 가려서 선정, 합격 시킬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너무 지나친 로봇 신뢰와 찬양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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