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운명을 뒤흔드는 사건들은 대체로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가 대표적이다. 특히 계엄 선포와 그 이후 탄핵 심판 정국은 2가지 메타포를 떠올린다. 전자는 블랙 스완(Black Swan·흑조)이고, 후자는 회색 코뿔소(Gray Rhino)다. 블랙 스완은 발생 가능성이 극도로 낮거나 예측하기 어렵지만, 한 번 일어나면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는 사건을 일컫는다. 회색 코뿔소는 발생 가능성이 높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음에도 이를 간과하거나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아 큰 위기가 발생하는 사건을 가리킨다.대한민국은 지난해 말부터 이 불길한 두 동물이 동시 출현했다는 점에서 위태로운 형국이다. 비상계엄은 1987년 제9차 헌법 개정이 이뤄진 이후 한 번도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국회에서 비상계엄령 해제 결의안이 가결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현실로 이어졌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중대한 위협에 직면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심판은 예상 가능한 수순이었다. 다만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그 여파는 국론 분열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 분열이 정치적 대립을 넘어 공동체 균열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주는 정국(政局)의 분수령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선고 공판이 26일 열린다.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도 금주 중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후 돌발 상황은 블랙 스완이다. 집회가 격화되고 감정이 폭주하면 극단주의가 고개를 들 것이다. '내전'이란 단어가 암암리에 회자하는 현실은 섬뜩하다. 회색 코뿔소는 더 조용히, 오래 지속될 위기다. 정치 불신과 사법 불복, 지역·계층 갈등은 누적된 불씨들이었다.이처럼 우리는 지금 블랙 스완의 그림자 속에서 회색 코뿔소를 마주하고 있다. 두 존재를 인지하고, 그 돌진을 막아내야 한다. 이 대표의 2심 선고와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은 단지 정치인의 운명만이 아니라, 우리 사법체계의 작동과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사법부 판결이 어느 쪽이든, 결과를 수용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사회적 성숙함이 없다면 이 혼란은 끝이 아닌 시작이 될 것이다. 연합